美 중산층 “봄날은 가버렸다”

  • 입력 2003년 8월 14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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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9만4000달러와 고속 승진. 대학을 졸업하고 통신회사 ‘노텔 네트워크’에 근무했던 지미 리처(30)의 인생은 한동안 핑크빛이었다.

2002년 3월 회사가 경영난에 빠져 해고됐을 때만 해도 그는 곧바로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도 이렇다 할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그는 결국 ‘눈높이’를 낮춰 종전 연봉의 절반 수준만 받고 최근 한 케이블 회사에 취직했다. 그는 “이젠 더 이상 직장과 꿈을 연관시키지 않는다”면서 “직장은 그저 일하는 곳일 뿐”이라고 말했다.

통신회사에서 컨설팅 일을 했던 크레그 헤이어(43) 역시 1990년대 말 경제호황의 혜택을 누렸던 전형적 중산층이었다. 한때 연봉 15만달러를 받았고 워싱턴 근교에 멋있는 저택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7월 직장에서 해고된 뒤 재취업에 실패하면서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현재 프리랜서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는 헤이어씨는 생활수준이 90년 이전으로 추락했다고 말한다.

미국의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4일 90년대 경제호황기에 통신 및 인터넷 관련 업종에 종사하며 각종 사회 경제적 혜택을 누렸던 이들이 과거보다 현저하게 낮은 수준의 삶을 살며 사회경제적으로 ‘하향이동(downward mobility)’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현상은 최근 경기회복세에도 불구하고 고용시장이 갈수록 얼어붙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는 미국의 경기침체가 공식적으로는 끝났지만 전체 임금 고용자수는 무려 20개월째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임금 고용자수가 16개월 연속 감소하다 멈춘 92년 상황보다 더욱 비관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001년 3월 경기침체로 들어선 이후 생긴 미국 실직자수는 현재 270만명을 넘는다.

두드러진 현상은 90년대 말 고소득으로 황금기를 구가한 화이트칼라 중산층의 ‘삶의 질’ 하향이동. 이들 중 상당수는 2000년 초 실직자가 된 뒤 불안정한 고용시장 때문에 이전 수준의 좋은 직장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테크놀로지, 전자통신업계 등에서 높은 주가를 올렸던 고액 연봉자들이 직장을 잃었을 뿐 아니라 가치도 하향평가받고 있다”면서 “이들은 (연봉 등에 관한) 기대치를 과거보다 훨씬 낮추도록 강요받고 있으며 상당수는 과거와 같은 임금과 지위를 다시는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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