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네덜란드 황금시대는 '렘브란트 시대'

  • 입력 2003년 8월 6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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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트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립박물관에서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경’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암스테르담=서영수기자
네덜란트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립박물관에서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경’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암스테르담=서영수기자
역사를 흥망성쇠의 관점에서 보면, 네덜란드의 최고 전성기는 17세기였다. 지금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육박하는 부자 나라이긴 하지만 1600년대 네덜란드는 단지 유럽의 한 나라가 아닌 ‘중심’이었다.

네덜란드는 신교파 칼뱅주의자들이 가톨릭을 강요하고 무거운 조세정책을 편 스페인으로부터 80년에 걸친 투쟁 끝에 독립한 나라다. 당시 이곳에는 사상의 자유와 해상무역을 통한 부(富)를 찾아 유럽의 상인, 은행가, 제조업자는 물론 철학자들까지 모여들었다.

이들의 주 무대는 암스테르담이었다. 1631년 이곳을 방문했던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세계 어느 곳에서 이토록 완전한 자유와 편리하고 진기한 물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찬탄했다.

찬란한 문화가 꽃피웠던 이 시절, 가장 인기 있는 문화상품은 다름 아닌 그림이었다. 신흥 부르주아들은 더 이상 욕망을 죄악시하지 않게 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종교화가 아닌 풍속화나 풍경화로 집을 장식하고 싶어 했다. 이와 함께 개인주의의 확장은 자신의 얼굴이나 단란한 가족 모습을 초상화로 남기는 유행을 낳았다. 암스테르담 예술과 문화의 중심 세력으로 화가들이 부상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 렘브란트 반 레인(1606∼1669)은 그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특이했던 화가였다.

그의 생애는 정확히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1602년 동인도 회사 설립 이후 60여년간)와 일치한다. 네덜란드인들은 이 시기를 ‘렘브란트의 시대’로 바꿔 부른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트램(전차)을 타고 10분만 가면 그의 동상이 서 있는 광장과 만난다. ‘렘브란트 광장’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저마다 공들여 제작한 다양한 미술 작품들을 내놓고 파는 화가들과 시장에서 물건 사듯 그림을 고르는 관광객 및 현지인들로 북적인다.

꽃을 소재로 다양한 유화 작품을 내놓은 힐버트(40)는 “어릴 적 렘브란트 그림을 보면서 화가의 꿈을 키웠다”며 “힘든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지금까지 나를 지키고 있는 것은 그의 치열한 예술혼”이라고 말했다.

이곳이 ‘현재의 렘브란트’를 만나는 공간이라면 광장에서 5번 트램을 타고 10분 정도 가면 만나는 네덜란드 국립박물관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 렘브란트를 호흡할 수 있는 곳이다. 라이크스 뮤지엄이라 불리는 이곳은 ‘야경(The Night Watch·1642년)’ 등 기념비적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1885년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 앞에는 연일 개관(오전 10시)도 하기 전에 사람들이 줄을 선다. 17세기 황금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250개의 전시실에 5000여점의 소장품들이 있지만 단연 인기 있는 전시실은 렘브란트의 방.

전시장 입구 오른쪽에 마련된 방에 들어서면 그의 자화상 연작들과 다양한 초상화들이 있다. 헝클어진 머리, 생기 있는 피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두 눈동자를 실감나게 그린 초기 자화상에서부터 첫 성서 작품인 ‘토비스와 어린 양을 안고 있는 안나’를 지나면 마침내 그 유명한 ‘야경’ 앞에 서게 된다.

가로 3m63cm, 세로 4m38cm의 대형 유화 작품인 이 그림 앞에는 붙박이처럼 꼼짝 않고 서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요, 아예 스케치북을 놓고 열심히 베끼는 어린 아이들로 가득하다. 긴 소파까지 놓여 있다.

‘야경’은 밤에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막 출발하려는 16명의 시민군 모습을 그린 작품. 웅장한 규모에 넘치는 생동감, 강렬한 명암대비, 파격적인 구도, 자연스러운 인물배치로 마치 사진을 찍듯, 인물 하나하나의 연극적인 몸짓과 혼란스러운 대열을 순간에 포착해 절묘하게 결합시켜 놓은 대작이다. 서양 회화사의 전설인 렘브란트의 역량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의 위대함은 바로 ‘야경’ 같은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독창성이다. 렘브란트는 경직된 우상들을 내세운 종교화 일색의 기존 전통을 깨부수고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와 인간의 내면에 천착한 서양 회화의 선구자다.

예수를 그리더라도 신성(神聖)을 강조하기보다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고, 유다 역시 신앙의 배신자가 아니라 잘못을 뉘우치는 불쌍한 인간으로 그렸다. 이처럼 인간의 내면과 영혼에 몰두했던 그의 탁월함은 80여점의 자화상 연작에서 절정에 달한다.

그는 청장년 시절의 성공을 정점으로 첫 아내와 자식과의 사별, 경제적 파산으로 이어지는 말년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고비마다 자화상을 남겼다. 그의 자화상은 천재에서 대가에 이르는 한 예술가의 인생 역정이자 삶의 막다른 과정에서 더욱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던 한 인간에 대한 시각적 증언이다.

덕수궁 미술관이 15일부터 선보이는 렘브란트 초상화 3점은 그의 초중말기 작품들로 얼굴 모습은 각각 다르지만 또 다른 형태의 자화상이라 할 만하다. ‘깃 달린 모자를 쓴 남자’(1635∼1640년)는 전성기 때 기량과 모습을 보는 듯하고, 초기작 ‘웃는 남자’(1629∼1630년)와 말기작인 ‘노인 습작’(1650년경)에서는 인간의 특징을 잡아내는 그의 천재적인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많지 않은 작품이지만 국내 처음 들어오는 렘브란트 원화이니만큼 그의 치열했던 예술혼을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02-779-5310

암스테르담=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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