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공장' 전략 도입]美제조업 '디지털'로 살아난다

  • 입력 2003년 5월 7일 18시 11분


코멘트
아시아보다 월등히 높은 인건비, 그러나 오르지 않는 생산성.

2000년 하반기 경기 침체가 시작될 무렵 미국 제조업체들이 갖고 있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였다. 기업들은 인건비가 싼 해외로 생산거점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제조업분야에서는 올 3월까지 21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그러나 해외 이전으로 미국내 제조업이 공동화(空洞化) 되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는 일. 미국 기업들이 최근 생산성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는 ‘유연한 공장(flexible factory)’ 전략을 속속 도입중이라고 비즈니스 위크 최근호(5월5일자)가 전했다.

이 전략은 단일 품종을 만들어내는 생산 라인을 디지털화하고 로봇 기술을 적용, 주문에 따라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 비즈니스 위크는 산업용 베어링 제조업체인 팀켄을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소개했다.

팀켄은 베어링에 대한 설계도면을 디지털 그래픽으로 축적, 어떤 주문이 오더라도 30분 이내에 설계도면을 수정 보완해 완성하도록 했다. 몇 년 전 한나절이 걸리던 작업이었다. 설계 완료 후 신제품 완성도 과거 6∼8주 걸렸으나 로봇 공정으로 불과 4시간이면 끝난다. 팀켄은 이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세계 76개 분공장에도 이 전략을 도입할 계획이다.

2001년 5월 화재로 공장이 전소된 라텍스 폼 인터내셔널(LFI)사는 ‘유연한 공장’ 전략으로 재기에 성공한 경우다. 이 회사는 합성고무와 플라스틱을 섞어 만드는 연성 재료인 라텍스를 만들어왔다. 이 회사는 화재 보험금을 타낸 후 공장을 폐쇄하고픈 유혹을 느꼈다. 그러나 불이 난 김에 공장 전체를 완전히 뜯어 고치고 디지털화했다. 이 결과 만들어낸 최신 라텍스는 스프링이 달린 침대용 매트릭스를 대신하는 최고급 소재가 됐다.

이 공장의 디지털 설비는 “집에서 노트북PC로도 공장 운영을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프랭크 비포 기술담당 부사장이 말했다. 이로 인해 효율성이 과거 공정보다 30% 높아졌으며 224명의 직원이 했던 일을 150명이 처리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 덕분에 미국 기업들의 생산성 성장률은 2001년 바닥수준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생산자연맹(MA)에 따르면 제조업 생산성 상승률은 2001년 1% 미만에서 지난해 4%대로 올라섰다.

‘유연한 공장’ 전략은 이처럼 효율성은 높여주지만 대신 근로자의 일자리를 줄인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고 비즈니스 위크는 전했다. 그러나 공장 자체가 해외로 옮겨가 버려 대량 실직을 가져오는 것보다는 낫다.

또 근로자들은 ‘유연한 공장’ 전략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훨씬 더 고급 기술자로 거듭나고 있다. 산업용 모터를 생산하는 발도르스 포트 스미스(BFS)사의 경우 이 전략 채택 후 1인당 생산성이 급상승해 중국이나 멕시코의 비슷한 제조업체 인력의 10분의 1로 똑같은 생산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전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