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앞에 인권 없다?…싱가포르 감염의심자 자택에 격리

  • 입력 2003년 5월 2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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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정부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확산을 막기 위해 감염이 의심되는 주민 2890명(4월 30일 현재)에 대해 자택대기 등 격리 조치를 취하고 있다.

격리 대상자가 생겨날 때마다 경비업체는 이들의 집 내부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한다. 보건당국은 수시로 격리 대상자에게 전화를 걸어 카메라를 작동토록 독려하는 한편 그의 모습이 경비업체 모니터에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한다.

당국의 전화를 연속해 받지 않거나 카메라 작동을 거부하는 등 비협조적인 대상자에게는 팔목에 발신장치를 강제로 부착한다. 집 밖에 나가기라도 하면 즉각 내무부에 신고돼 벌금을 물어야 한다. 위반행위가 계속되면 구속까지 될 수 있다고 당국은 경고하고 있다.

사스 파문이 장기화되자 동아시아 각국에서 사스 감염이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인권 침해가 빚어지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2일 보도했다. 조지 오웰이 경고한 ‘감시사회’에 대한 공포가 사스로 인해 21세기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

싱가포르의 경우 격리 대상자는 집안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이 경비회사 모니터를 통해 노출된다. 당국의 이런 조치에 대해 “지나치다”는 비판도 있지만 “더 이상의 감염을 막으려면 엄격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태국 정부는 중국 홍콩 등 감염지역을 여행하고 귀국한 사람에게 잠복기간인 10일간 집이나 호텔에서 대기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 조치가 시행된 뒤 보건당국에는 직장 동료의 위반 사실을 알리는 신고가 여러 건 접수됐다. 한 직장인은 “회사 상사가 감염지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집을 벗어나 활동하고 있다”고 ‘밀고’했다.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의 공항 당국은 감염자의 항공기 탑승을 신고하는 주민에게 500∼3000위안의 사례금을 준다고 발표했다.

일부 주민들은 몸 상태가 조금만 이상해도 당국이 직권으로 격리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상하이(上海)의 호텔에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체온계를 통과해야 하는데 혹시라도 고열로 판정되면 곧바로 전문의료시설로 강제 이송된다.

인권 침해 논란을 우려해 신중한 태도를 보여온 일본도 감염 추정자로 판명될 경우 그가 최근 이용한 숙박시설과 교통수단 등을 공표할 방침이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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