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S베이징은 공황상태]"發病땐 수용소 간다" 소문 흉흉

  • 입력 2003년 4월 24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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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확산되면서 중국의 수도 베이징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시민들은 밀가루 라면 등 비상식량 사재기에 나섰고, 거리는 한산하다. 또 사스와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흉흉한 소문들이 번지면서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24일 낮 12시경 베이징(北京)시에서 40여㎞ 떨어진 허베이(河北)성 접경의 바이먀오(白廟) 톨게이트. 공안 차량 2대가 배치돼 베이징 진출입 차량들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평소 화물차 등으로 붐비던 모습과 달리 승용차들만 드문드문 지나다닐 뿐 적막감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조금 뒤 베이징 셴다이청(現代城)에서 출발, 허베이 싼허(三河)시까지 가는 930번 버스에서 승객들이 내려 톨게이트 건너편의 허베이성 번호판을 단 20여대의 택시에 올라탔다. 버스는 방향을 바꿔 베이징으로 되돌아갔다.

흰 마스크를 쓴 톨게이트 여직원은 “이번 주부터 베이징과 허베이를 잇는 노선버스의 진출입이 통제돼 승객들이 중간에서 갈아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베이징은 사실상 외부와 격리 상태에 들어갔다. 하지만 시를 전면 봉쇄하면 물자 수급 등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 우려돼 허가 받은 차량은 통과시키는 등 부분 봉쇄 조치를 취하고 있다.

베이징에서는 극심한 사재기 현상이 빚어지는 등 시민들이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평소 한산한 시간인 이날 오전 10시반경 왕징(望京) 쇼핑센터 주차장은 생필품을 사러 나온 시민들로 차를 댈 수 없을 정도로 붐볐다. 쌀 밀가루 라면 우유 만두 등이 진열된 매장은 텅 비어 있었으며 바닥에는 창고의 재고품을 모두 꺼낸 듯 빈 박스가 즐비했다.

점원 왕젠핑(王建平)은 “시 당국이 재래시장 대부분을 25일부터 폐쇄하고 쇼핑센터를 이용토록 하면서 손님이 평소의 3배 수준”이라며 “채소 등의 가격은 최고 50%까지 치솟았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 교민들이 많이 찾는 왕징 낙원상가는 김치를 찾는 중국인들로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곳의 조선족 점원은 “어제 담은 김치 100포기가 오전에 모두 동났다”면서 “김치와 마늘 파 등이 사스에 면역력이 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베이징 시내를 오가는 시민들은 80% 이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으며 시민들이 공공장소 출입을 삼가면서 문을 닫는 식당과 유흥업소도 늘고 있다.

사스와 관련된 미확인 소문들도 기세를 떨치고 있다. “사스 의심환자로 판명되면 진짜 환자와 한 묶음으로 수용시설에 격리시켜 죽든지 살든지 치료도 해주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져 시민들이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아예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하고 있다.

또 “의료시설과 인력 부족으로 다음 주부터 베이징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다” “당국이 계엄 선포를 검토하고 있다”는 등의 소문도 나돌고 있다.

사스 피해에 대한 중국의 축소 은폐와 늑장 대응으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들끓으면서 후진타오(胡錦濤)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등 새 지도부와 장쩌민(江澤民)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핵심으로 한 상하이(上海)방간의 권력투쟁설마저 나오고 있다. 새 지도부는 중국이 성실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사스의 정확한 진상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반면 장 군사위 주석 계열은 중국의 국제적 이미지를 흐리지 않고 필요 없는 불안 확산을 막기 위해 은폐 축소를 강행하자고 맞서 왔다는 것이다.

중국 지식인들은 24일 정부에 대해 사스 확산을 저지하라고 촉구하며 인터넷을 통해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왕씨 성의 한 택시운전사는 “지금 상황이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보다 더욱 심각한 것 같다”면서 “중국이 총체적인 국가 위기에 빠졌다”고 탄식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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