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수씨 리포트]포연속 시민들 "모든건 신의뜻" 피난안가

  • 입력 2003년 3월 24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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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이 비처럼 쏟아지는 ‘충격과 공포’의 땅 바그다드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 취재기자인 프리랜서 조성수씨(35)가 대공습 이후 바그다드의 생생한 표정을 보내왔다. 전쟁전문 프리랜서 기자 모임인 FNS(Frontline News Service) 소속인 조씨는 1999년 동티모르 독립을 둘러싼 유혈폭동과 학살의 끔찍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2000년 세계적 권위의 월드프레스포토상 스폿뉴스 부문 대상을 받았다. 그가 카메라에 담은 바그다드의 상황은 뉴스위크와 뉴요커 파리마치 등 세계 유수의 잡지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 》

“전쟁이 났다고 먹고 자고 사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폭격이 있다고 모두가 다 죽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런들 또 어쩌겠는가.”

호텔 앞에서 담배를 파는 알리(16)의 말이다. 바그다드가 불바다로 변해 가는 지금도 바그다드의 일상은 전쟁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로변은 철시했지만 바로 뒷골목에선 여전히 시장이 서고 사람들의 통행도 빈번하다. 전쟁은 두렵지만 피란은 가지 않는다. 코앞에서 터지는 폭탄 사이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수시로 목격된다.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믿는 바그다드인들의 표정에서 ‘전쟁의 일상화’라는 말이 실감난다.

많은 정부 건물이 흉물로 변한 채 연기를 내뿜고 있는 거리에서는 군인과 경찰들이 더 많은 참호를 파고 있다. 물가는 며칠 새 2∼3배가 올라 인심도 각박해져 간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서서히 여유가 사라지면서 곧 미군이 들이닥치리라는 예감이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TV와 라디오에서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찬양하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라디오 주변에 모여 전쟁소식에 귀를 기울이지만 구체적인 전황은 알 수 없다. 개전 후 정부의 언론통제는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BBC나 아랍어 뉴스만이 전쟁소식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세계의 언론은 미군의 바그다드 입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바그다드인들은 아직 후세인 대통령의 통치 아래 살고 있다.

“왜 민간인을 폭격하는가. 우리는 후세인 대통령을 지지하며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간 사둔은 흥분한다. 병실에 누워있는 어린이들은 아직도 겁에 질린 표정이다.

정부의 통제를 받는 것은 100여명의 외신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오전 9∼10시 정부대변인이 나와 전날 폭격에 대한 피해와 이라크군의 전과를 알리는 브리핑을 한다. 이후 기자들을 모두 버스에 싣고 그들이 보여 주고 싶은 장소로 출발한다. 병원 등 아주 제한적인 장소만 허락할 뿐 폭격장소는 보여 주지 않고 있다.

개전 직전 공보부 건물에 있던 프레스센터가 폐쇄되고 대부분의 기자들은 정부가 운영하는 라시드 호텔, 만수르 호텔, 팔레스타인 호텔로 옮겨 함께 움직이고 있다. 안전과 지리적 여건 등을 고려한 선택이다. 이 중 팔레스타인 호텔은 폭격대상인 정부건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입지조건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취재환경은 최악이다. 기관원들이 밤새 기자들이 투숙하고 있는 방을 돌아다니며 위성전화 사용과 촬영을 막아 숨바꼭질을 벌인다. 많은 기자들이 호텔에서 폭격장면을 촬영 하다가 테이프와 메모리카드를 빼앗겼다. 지시에 따르지 않는 기자는 무조건 추방한다는 방침이다.

미군의 바그다드 공습이 시작된 지 5일째, 한번도 신발을 벗지 못한 기자도 많다. 오후 5시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기자들은 예상 폭격지점을 잘 볼 수 있는 자리를 잡으려 분주히 호텔 복도를 오간다.

그리고 대기상태로 들어가 언제 어느 방향에서 벌어질지 모르는 폭격을 기다린다. 하늘이 훤하게 밝아오는 오전 5∼6시까지. 해가 뜨면 한두시간 눈을 붙인다.

통신장비 및 전자장비를 마비시킨다는 신무기 e탄 사용에 대비해 디지털카메라와 위성전화의 배터리를 빼고 기계를 알루미늄 포일에 싸 두는 사람, 랩에 싸 냉장고 안에 넣어두는 사람.

왜 이곳에 있는가를 생각해 볼 겨를이 없다. 또 하나의 전쟁일 뿐이다.

조성수 바그다드 잔류 한국인 프리랜서 사진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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