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월드워치]日 온천지 전통 료칸(旅館)을 가다

  • 입력 2003년 3월 9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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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또 찾아주세요.” 료칸 ‘나라야’의 오카미(안주인)가 배웅을 나와 손님들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있다. -박원재특파원
“고맙습니다. 또 찾아주세요.” 료칸 ‘나라야’의 오카미(안주인)가 배웅을 나와 손님들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있다. -박원재특파원
일본 온천지의 전통 료칸(旅館·여관)은 일본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도 가장 좋아하는 여행 코스. 하지만 장기 불황으로 료칸을 찾는 발길이 눈에 띄게 줄었다. 폐업하는 료칸이 속출하자 업소들은 가격 파괴, 이벤트 마련 등을 통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 현장을 살펴보았다.

도쿄(東京)에서 북서쪽으로 200㎞ 떨어진 군마현 구사쓰(草津). 동네 한복판에서 원천(源泉)이 솟아 나오는 이곳은 온천수의 질과 양에서 일본의 으뜸으로 꼽힌다.

130년 전 개업한 전통 료칸 ‘나라야(奈良屋)’와 1973년 문을 연 가족호텔 ‘나우리조트’를 경영중인 고바야시 다카시(小林貴·58) 사장.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그는 자신을 “거품에서 불황까지 온천경기의 온탕과 냉탕을 두루 경험한 산증인”라고 소개했다.

▽거품의 시절 ‘아 옛날이여’=고바야시 사장은 거품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 후반을 잊지 못한다. 당시 대기업 사원들은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회사 깃발을 앞세우고 단체관광을 하곤 했다. 산골짜기 소규모 온천지에서도 빈방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명목은 주로 ‘회사발전 세미나’였지만 실제로는 회사돈으로 즐겨 보자는 여흥의 성격이 짙었다. 이들은 널찍한 연회장과 가라오케 시설이 없는 온천 여관은 찾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전국 온천업계는 앞다퉈 투자에 나섰다. 고바야시 사장도 호텔 두 곳을 새로 짓고 하나를 새로 사들였다.

90년대 들어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경기 악화로 기업들의 단체관광이 사라지자 거액을 들여 단장한 료칸은 텅텅 비었다. 그도 도산의 쓴맛을 본 뒤 호텔 세 곳을 팔아 가까스로 재기했다.

▽가격 파괴-고급화로 변신=그럼에도 불구하고 154개나 되는 객실은 주말에도 절반을 채우기가 힘들었다. 적자가 계속되자 평일 단체 숙박료를 절반까지 낮췄다. 각 여행사에 팸플릿을 돌려 지방 단체손님을 끌었다. 99년 40%대였던 객실가동률은 2000년 65%, 2001년 72%로 높아졌고 지난달엔 97%로 치솟았다.

전통 료칸 ‘나라야’는 고급화 전략으로 밀고 나갔다. 아직도 서비스만 좋으면 기꺼이 비싼 돈을 치르겠다는 고객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 인테리어를 철저하게 일본식으로 꾸미고 요리의 질을 높였으며 종업원 친절 교육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고급 손님을 겨냥해 객실 면적을 두 배로 넓혔다. 객실은 53개에서 34개로 줄었지만 요금이 두 배로 올라 수익성이 좋아졌고 종업원 한 명이 담당하는 객실수가 줄면서 서비스도 개선됐다.

▽다양한 이벤트와 해외관광객 유치=구사쓰 온천지 한복판에는 관광객들이 온천물에 발을 담그고 쉴 수 있는 족탕이 있다. 곳곳에 무료 목욕탕도 있다. 젊은층을 끌기 위해 겨울에는 눈 축제를, 여름에는 유럽 교향악단을 초청해 국제음악제를 개최한다. 경비는 자치단체와 료칸 주인들이 공동으로 부담한다.

해외관광객 유치도 빼놓을 수 없다. 나우리조트호텔의 마쓰오카 히데오(松岡秀男) 총지배인은 한국인 손님을 위해 김치 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자체 개발했다는 김치 두 가지를 기자에게 내놓은 뒤 “본고장 김치와 많이 다르냐”며 조심스럽게 반응을 살폈다. 이 호텔은 3년 전부터 대만에서 판촉활동을 벌여 작년에만 2000명의 대만 손님을 유치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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