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한메이/南-北 유학생활서 ‘예의’ 배웠죠

  • 입력 2003년 2월 28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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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국인으로 국가장학생이 되어 북한에서 4년간 대학을 다녔다. 이후 97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와 6년 더 공부한 끝에 꿈에도 그리던 국문학 박사가 됐다.

한반도에서 청춘을 보낸 10년간의 유학생활은 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남북한이 비록 체제가 달라 대립양상을 빚고 있지만, 나는 두 나라가 나름대로 다 좋고 고맙다.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이라 비슷한 점도 많지만, 50년 이상 분단된 탓에 다른 점도 많다. 그중 가장 기억나는 것은 음식과 예절이다. 한국에서는 삶의 세 요소를 의식주(衣食住)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식(食)을 먼저 내세워 ‘식의주’라고 말한다. 그만큼 먹고살기가 힘든 탓일 것이다.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백성들은 음식을 하늘로 여긴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북한 곳곳에서는 ‘쌀은 공산주의’라는 간판이 보였다.

북한은 유학생 식당에서 그 나라 음식을 많이 만들어준다. 또한 외국인을 손님으로 간주, 배려하기 때문에 큰 불편이 없었다. 북한에서는 중국음식을 더 많이 먹은 셈인데, 외출해 기껏 먹어본 게 불고기와 냉면 등 몇 가지에 불과했다. 반면 한국은 외국인을 특별히 배려하지 않고 자유롭게 메뉴를 고르게 한다. 처음에는 매운 음식과 김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으나, 이제 김치가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또 하나, 한국생활에서 나를 당혹하게 만든 것은 복잡한 인사법이었다. 단어와 토씨 하나하나가 내포하는 섬세한 뉘앙스 차이를 외국인 입장에서 어떻게 단시일에 알겠는가. 언어실력도 문제겠으나 윗사람 앞에서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존경을 표시하는 방법은 지극히 까다롭게 느껴졌다.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일상생활의 예의범절에 대해 까다롭거나 신경을 크게 쓰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윗사람에게 물건을 전달할 때 두 손, 아니면 한 손을 밑에 받쳐서 드려야 하고, 면전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이 실례라는 것을 한참 생활한 뒤에야 알았다. 전화를 자주 해 우정을 다지는 것도 한국에서 터득한 인사법이다.

이처럼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행동방식의 차이는 초창기 한국에서의 원활한 의사소통에 많은 지장을 주었다. 그러나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나는 한국의 복잡한 예의범절 속에 동양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한 저력 때문인지 대체로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개성도 매우 존중하는 듯했다. 나는 중국에 돌아가면 이러한 ‘동방예의지국’의 에티켓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해줄 것이다.

이제 나의 소망은 14년 전 더듬거리며 ‘가갸거겨’ 한글을 배우던 심정으로, 중국학생들에게 남북한의 문화와 학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 남북한과 중국의 문학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을 다채롭고 깊게 만들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한메이는 누구?▼

1971년 중국 산둥(山東)성 출생. 북한 김일성종합대 조선어문학과를 졸업한 후 성균관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후기 김성탄 문학비평의 수용양상 연구’로 국문학 박사가 되었으며 새 학기부터 중국 산둥대 한국어학과에서 가르칠 예정이다.

한메이 성균관대 국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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