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계 일각 "전쟁이 평화보다 낫다"

  • 입력 2003년 2월 4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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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사태 등이 만들어낸 불확실성이 세계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금세 해결될 기미를 보였던 이라크사태가 해를 넘겼고 다시 ‘3월 개전(開戰)설’까지 떠오르면서 유가 금리 등 가격변수가 흔들리고 있다. 가뜩이나 세계적인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진 터에 이 같은 불확실성까지 겹쳐 소비심리와 투자의욕은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세계 경제계 일각에서는 ‘전쟁이 평화보다 낫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자꾸 미뤄지는 이라크해법=‘이라크 전쟁’이란 말이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세계 언론의 화두로 떠오른 것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던 2001년 12월부터다. 지난해 11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라크결의안을 통과시킨 뒤엔 ‘전운이 짙어졌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라크사태는 1월27일 무기사찰단의 대량살상무기(WMD) 사찰결과 보고서가 제출되면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미국 영국 중심의 이라크 침공을 견제하면서 ‘3월 초 2차 사찰결과를 지켜본 뒤’로 해법은 또다시 미뤄졌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국정연설을 통해 “더 이상 이라크에 기회를 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미국의 침공 직전 △숨겨놓은 WMD를 전격 공개하거나 △망명 등 정치적 사퇴 수순을 밟으면 이라크 정정은 다시 교착상태로 빠질 수 있다.


▽‘전쟁 프리미엄’으로 흔들리는 세계시장=‘만성적인’ 전쟁위기로 거의 모든 국제경제 ‘가격변수’에 프리미엄이 붙었다. 중동지역에서 극동 아시아로 운항하는 유조선 국제운임지수는 지난해 5월 50에서 12월 123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30일엔 150을 넘어섰다.

미국이 이라크와 북핵 등 국제적 위기의 중심에 서자 미 달러화는 약세로, 반사적으로 유로화는 강세로 치닫고 있다. 전 세계 기업은 기축(基軸)통화 가치가 흔들리면서 사업계획 작성이나 환(換)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이중침체(더블 딥) 가능성에 주눅든 미 주식시장은 이라크 사태가 해결될 때까진 바닥권에서 헤어나지 못할 전망. 동조화 현상에 따라 전 세계 주식시장까지 늪에 빠져 있다. 인피니티 프로퍼티, 베리존 커뮤니케이션 등 신규 상장을 계획했던 기업들이 시장침체를 이유로 이를 미루고 있어 올해 뉴욕 증시에 상장한 기업은 4일 현재까지도 전무하다. 반면 세계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자 곳곳에서 금값이 뛰고 있다. 도쿄에서 금 소매시세는 3일 g당 1539엔(소비세 포함)에 거래돼 92년 8월 이후 10년6개월 만에 최고치.

▽유가프리미엄 5달러=유가도 서부텍사스중질유(WTI)가 배럴당 30달러를 넘은 데 이어 아시아권이 주로 들여다 쓰는 두바이산까지 지난달 31일 29.61달러까지 올랐다. 91년 걸프전 직전 가격인 32달러에 근접한 것. 뉴욕상품선물거래소(NYME)에서 지난달 31일 원유선물 3월 인도분 거래가는 배럴당 33.51달러. 그러나 12월 인도분은 27달러선까지 떨어져 거래됐다. 7월 만기 이후의 선물 거래가격을 토대로 산출한 평균 프리미엄은 5달러. 국제금융센터 김위대 선임연구원은 “7월쯤엔 전쟁이 끝나 있을 것이란 시장의 기대심리가 반영된 결과”라며 “미국의 단기간 승리가 불확실해지면 프리미엄이 추가로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이 평화보다 낫다(?)’=지난해 11월 골드만삭스 도이체방크 등 유력 투자은행의 이코노미스트들이 이라크사태의 4가지 시나리오에 맞춰 유가 소비자신뢰 등 여러 변수의 움직임을 추정했다. 그 결과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때보다 미국의 속전속결 승리가 미 경제에 더 유리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뉴스위크 최신호(10일자)는 이 밖에 런던의 기업경영자들로 구성된 ‘임원연구소(IOD)’도 ‘단기전이 유가를 20달러로 떨어뜨리고 주가를 5% 정도 띄운다’는 보고서를 냈다며 전쟁을 지지하는 경제계의 일부 주장을 소개했다.

그러나 최근의 불확실성이 이라크전쟁 탓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발 디플레이션 압력이나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 국가로 분류한 북한이나 이란의 존재도 역시 불확실성을 더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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