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임기 7년연장’ 100% 지지

  • 입력 2002년 10월 16일 18시 10분


변신의 귀재 - 동아일보 자료사진
변신의 귀재 - 동아일보 자료사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국민투표에서 100%의 지지를 얻어 7년 임기를 한 차례 더 연장했다고 이자트 이브라힘 이라크 혁명평의회(RCC) 부의장이 16일 공식 발표했다.

후세인 대통령에 이어 이라크 권력서열 2위인 이브라힘 부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오늘은 이라크 국민이 영광스럽고 고결한 지도자를 자유 의지에 따라 승인한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날”이라며 이같이 밝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후세인 대통령의 아들 우다이 소유의 알 샤밥 TV도 국민투표관리위원회의 초반 개표 결과를 인용해 후세인 대통령이 100%의 지지를 획득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투표는 전국 15개주 1905개 투표소에서 유권자 1144만5638명이 참여한 가운데 12시간 동안 실시됐다.

이에 대해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아무도 이날 투표 결과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영국 외무부도 성명을 통해 “단독 출마 후보가 반체제인사들을 살해 고문하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선거란 없다”고 폄훼했다.

이라크 정부는 투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날을 공휴일로 선포했으며 주민들은 거리로 몰려 나와 후세인 지지 구호를 외치는 등 승리를 자축했다.

한편 홍보효과를 노린 이라크 정부의 초청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 600여명의 기자가 몰려 투표 과정을 취재했으며 정치인과 비정부기구(NGO) 대표 등 3000여명의 외국 참관인도 주요 도시의 투표소들을 둘러봤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千의 얼굴 후세인, 35년 권력 주물러▼

‘권불십년(權不十年).’

권력의 무상함을 뜻하는 이 말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만은 통하지 않는다. 대통령 외에도 혁명평의회(RCC)의장, 집권 바트당 총재 등 거의 모든 권좌를 독식한 지 올해로 23년째. 68년 쿠데타 이후 허수아비 대통령을 주무른 11년을 더하면 무려 35년째다.

‘지지율 100%’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 요인은 국민을 철저히 세뇌시키는 대중조작이다.

대중조작의 첨병인 국영방송은 1993년부터 후세인 대통령의 장남 우다이가 장악하고 있다. 이 방송은 후세인 대통령과 우다이, 차남 쿠사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도하며 권력 유지를 위해 활용된다.

또 후세인 대통령은 이라크 최고의 베스트셀러 3권을 쓴 대중소설가다. 첫 작품 ‘왕과 자비바’는 후세인 대통령을 닮은 영웅적인 왕이 이라크 국민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시골처녀 자비바에게 반한 뒤 사악한 적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결실을 본다는 내용이다. 적대자는 물론 미국이다.

동시에 후세인 대통령은 이라크 거의 모든 가게 선전판에 등장하는 ‘슈퍼모델’이다. 이라크 곳곳에는 그의 조각과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집권 초기부터 그는 대통령보다 ‘왕’이나 ‘술탄(이슬람 국가의 군주)’의 이미지를 더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적 위기 때마다 과거 이라크 군주들이 즐겼던 충성서약을 받는 것도 이 때문.

과거 술탄들이 앉았던 왕관을 본뜬 의자에 앉고 ‘신, 조국, 왕’이란 과거 슬로건을 ‘신, 조국, 지도자’로 바꿨다. 은연 중 자신을 왕과 같은 존재로 격상시킨 것.

외신들은 미국 등 서방의 압력이 역설적으로 후세인 대통령의 대중조작을 거들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후세인 대통령은 자신의 오판(쿠웨이트 침공)이 초래한 국제적인 금수(禁輸)조치로 이라크인이 경제적 고통을 당하자 이를 모두 미국 등 서방의 책임으로 떠넘겼다. 이와 함께 ‘서방에 맞선 진정한 아랍인’이란 이미지를 전파해 서방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이라크인이 더욱 그에게 매달리도록 만들었다는 것.

이 같은 대중조작의 성공으로 후세인 대통령은 소수파인 수니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이라크는 다수파인 시아파 이슬람세력이 인구의 65%를 차지하고 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이라크의 현주소▼

이라크는 석유매장량이 1000억배럴로 중동지역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2위의 산유국이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웃도는 반면 이라크는 1000달러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77년 이라크의 1인당 국민소득은 1500달러선. 79년 사담 후세인이 공식적으로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국민소득은 계속 곤두박질쳤다. 5세가 되기 전 사망하는 영아의 비율이 80년대 말에는 1000명당 56명이었던 것이 90년대 중반에는 131명으로 늘었다.

1980∼88년 8년에 걸친 이란과의 전쟁, 90년 쿠웨이트 침공과 이에 따른 유엔의 경제 제재가 경제난의 원인이다. 후세인 대통령의 무모한 개전(開戰) 결정이 낳은 대가를 국민이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라크 국민이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이반(離反)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이라크 전문가인 오프라 벤지오 텔아비브대 모세 다얀 센터 선임연구원은 “후세인 대통령이 나라의 부강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에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후세인 대통령의 집권기반은 유일 정당인 바트당과 그의 고향 티크리트 출신 4개 가문의 친족들. 아들인 우다이와 쿠사이를 모두 군부지도자의 딸과 결혼시켜 군부와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반란혐의자를 숙청하는 등 잠재적 불만세력을 제거해와 이라크 내에서는 더 이상 위협적인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같은 정치적인 요인 외에도 이라크의 독특한 경제체제도 후세인 정권의 안정을 받쳐주는 요인이다. 이라크는 사회주의적 배급체제와 자본주의를 결합한 혼합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설탕과 차, 밀가루 등 한 달간의 기본식량 패키지를 불과 250디나르(약 100원)에 판매한다. 상인은 판매가의 3%를 가져간다. 같은 방식으로 택시운전사에게는 차량을, 농민에게는 트랙터를 싼값에 제공한다. 이를 이라크에서는 ‘진보된 사회주의’라고 한다.

농어민들은 모두 협동조합에 소속돼 있고 협동조합은 농어민이 판매한 가격의 5%를 징수하되 연료 등 기본적인 물품을 싼값에 공급한다. 협동조합의 임원은 투표로 선출된다. 이들은 배의 엔진과 같은 값비싼 물품을 싸게 제공할 경우 추첨으로 수혜자를 선정, 나름대로 공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기업의 경우 세금은 이익의 3∼4%선으로 낮다.

7일 이라크 르포기사를 게재한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라크 정부가 석유를 판매한 돈으로 생필품을 구입해 국민에게 골고루 나눠줌으로써 정권에 대한 불만을 차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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