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이후 ‘사생활 감시’ 전세계 확산

  • 입력 2002년 8월 21일 18시 32분


조지 오웰이 예언한 ‘빅 브러더(Big Brother)’의 강림(降臨)인가. 개인의 사생활 감시 조치가 속속 출현하고 있다. 9·11 테러 1주년을 맞으면서 테러를 사전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이 같은 ‘사생활 들여다보기’가 나라를 막론하고 한층 심해지고 있다.

▽누가 들여다보는가〓9·11 테러의 악몽을 안고 있는 미국에서는 보다 깊고 넓은 감시 조치가 등장했다. 미 법무부는 9월11일부터 ‘국가안보 위협 가능성이 있는’ 외국인 방문객에 대해 지문 채취와 사진 촬영 등을 실시하는 ‘국가안보 출입국 등록제(NSEERS)’를 도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검색대에 선 개인의 뇌파와 호흡 등 신체의 미세한 변화를 탐지하는 시스템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민간에서는 ‘진실 전화’라고 불리는 전화용 거짓말탐지기 사용도 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지가 18일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는 환경 미화를 명목으로 거리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했으며, 플로리다주 탬파에 이어 버지니아는 시 전역에 범죄자 식별을 위한 ‘얼굴 인식’ 카메라 설치를 추진 중이다.

전통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중시해 온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유럽연합(EU)은 테러 및 각종 범죄 예방과 수사를 위해 최소 1년간 e메일과 전화통화 등 개인 통신기록을 보존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앞서 EU는 지난달 30일 대 테러 수사관에게 전화통화 명세 등 민간 전자기록과 인터넷상의 개인 데이터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대폭 확대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제조업체 가운데 42%가 기업비밀 누설 방지를 위해 사원의 e메일을 감시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20일 보도했다. 베트남에는 반정부 활동의 온상으로 지목된 4000여개의 인터넷 카페에 대해 감시를 강화됐다고 국영 토이체 신문이 전했다.

▽사생활 보호냐, 안전이냐〓전문가들은 9·11 테러 이후 범죄 수사 감시가 ‘표적 감시’에서 ‘일괄 감시’ 스타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시민자유연맹의 로라 머피 회장은 “빅 브러더가 한발 가까이 다가왔다”고 우려했으며 EU 내 사생활 및 인권 침해 감시기구인 스테이트 워치는 “EU가 선량한 시민들을 상대로 ‘낚시질’에 나서고 있다”고 비난했다. 프랑스에서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재선 이후 치안 강화로 ‘경찰국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안전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와 9·11 테러 이후 각국 정부의 보수화 경향과 맞물리면서 개인을 몰래 감시하고 들여다보는 일은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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