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밀밴드 국무장관 "제3의 길은 건재하다"

  • 입력 2002년 8월 15일 18시 03분


“제3의 길은 건재하다. 강력하고 역동적인 경제를 원하면 먼저 사회정의를 바로세워야 한다.”

1997년 총선에서 영국 노동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제3의 길’이라는 정치철학을 성안했던 막후 핵심인물인 데이비드 밀밴드 영국 국무장관(사진)이 13일 BBC방송의 인터뷰 프로그램에 출연, ‘제3의 길’ 옹호론을 펼쳤다.

최근 거듭되는 악재로 토니 블레어 총리의 인기가 급락하면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 온 ‘제3의 길’ 역시 안팎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밀밴드 국무장관은 ‘제3의 길’에 뿌리는 둔 블레어리즘은 △출신보다는 능력을 중시하는 개방사회 △권리에 책임이 따르는 강한 시민사회 △활발한 외교로 영국을 유럽의 주도 국가로 만드는 것으로 압축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제3의 길’이 ‘좌파의 탈을 쓴 대처리즘’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의식한 듯 “80년대 보수당은 경제적 효율을 앞세웠지만 ‘신노동당’은 사회정의가 먼저 확립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열띤 ‘제3의 길’ 옹호론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실정이다. 블레어 정권이 경제성장에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다 외교적으로도 9·11 테러 이후 지나치게 미국의 눈치보기에 급급했다는 비난이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

사정이 이렇자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리오넬 조스팽 전 프랑스 총리도 ‘제3의 길’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심지어 노동당 정부의 존 프레스콧 부총리마저 ‘제3의 길’에 대한 책을 서점의 미스터리 코너에서 찾았다고 뼈있는 농담을 던졌을 정도. 헤리티지 재단 국제연구소 부소장 헬레 데일은 최근 워싱턴타임스 칼럼을 통해 “제3의 길을 표방하며 집권한 블레어 총리가 연명하고 있는 것은 전통적인 노동당 정책에서 우익쪽으로 정책 방향을 돌렸기 때문”이라며 “우경화되고 있는 유럽에서 제3의 길은 퇴조의 길을 걸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제3의 길'이란▼

1997년 40대의 나이로 집권에 성공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좌파와 우파의 입장을 아우르고 종합하기 위해 내건 실용주의적 정치 이념. 영국의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의 앤서니 기든스 교수가 94년 발표한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란 논문에 이론적 바탕을 두고 있다. 국가중심적이고 복지를 강조하는 좌파 사회주의와 시장과 효율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적 요소를 절충한 방식으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블레어 집권 5년동안 괄목할만한 경제적 성장이나 시민사회의 강화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난이 일면서 ‘제3의 길’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집권 노동당 내 주요 인사들마저 제3의 길에 대해 “좌파 철학을 훼손시키는 정치적 매춘”, “영국만의 독특한 특성을 파괴한 이념”이라고 비판하고 나서 그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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