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부정 유럽·아시아로 확산조짐

  • 입력 2002년 7월 15일 16시 29분


최근 미국을 뒤흔들고 있는 회계부정 논란이 아시아와 유럽으로 확대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아시아는 97∼9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기업과 금융권의 구조조정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회계 부문에서는 여전히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어 세계적인 회계부정 스캔들의 뇌관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상최대 규모의 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일본의 금융권은 대출 사업에서 발생한 손실을 감추기 위해 금리 스와프(교환 거래)와 관련된 회계 규칙을 악용해 매출을 부풀려왔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14일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의 내부 자료를 인용, 보도했다.

회계부정 의혹을 사고 있는 금융기관은 자산 기준으로 세계 최대 은행인 미즈호 파이낸셜 그룹을 비롯해 미쓰비시 도쿄 파이낸셜 그룹(MTFG), SMBC, UFG 등 4개. 이들 은행은 파생 금융기법인 스와프 거래에 대한 일본 회계당국의 규제가 느슨한 점을 악용해 불법적인 환투기성 스와프 거래를 통해 매출을 부풀려왔다고 S&P는 평가했다. 불법회계를 통해 미즈호, MTFG, UFG, SMBC는 각각 매출을 27%, 158%, 80%, 21% 과대 계상한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기업 투명성 제고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불법회계 기업이 5000∼1만여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스리니바사 매두르 연구원은 "규제 시스템이 비교적 잘 발달된 미국과 같은 선진 경제국에서 회계부정 스캔들이 일어나는 마당에 아시아 쪽은 어떨지 누구도 모른다"면서 "미국 기업들이 실적을 왜곡한다면 아시아 기업들은 아예 실적을 공개하지도 않는 등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경제학자 마이클 버그만은 "아시아 대기업들의 회계감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미국계 회계법인의 지사들은 본사로부터 업무 간섭을 전혀 받고 있지 않기 때문에 회계조작의 위험성이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유럽쪽에서는 90년대말 인수·합병(M&A) 열풍을 주도했던 미디어·통신 기업들을 중심으로 분식회계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이달초 장-마리 메시에 회장이 퇴임하는 등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유럽 최대 미디어 그룹 비벤디는 290억 유로에 달하는 채무를 줄이기 위해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B스카이B 주식을 불법 매각해 매출 15억 유로를 부풀렸다고 프랑스 르몽드지가 최근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다음주 발표되는 도이체 텔레콤과 프랑스 텔레콤의 2·4분기 실적이 유럽의 분식회계 논란에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통신업계를 대표하는 도이체 텔레콤과 프랑스 텔레콤은 무분별한 기업 합병으로 인한 비용 상승 때문에 채무가 각각 670억 유로와 607억 유로까지 치솟으면서 최고경영자(CEO) 퇴진이 임박한 상태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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