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산책]바캉스 시즌 버려지는 佛 노인들

  • 입력 2002년 7월 11일 18시 17분


‘서있을 힘만 있으면 바캉스를 떠난다.’

프랑스인에게 바캉스는 알파요, 오메가이며 삶의 전부다. 평생을 이런 ‘바캉스 문화’에 젖어 살아온 노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인구 6000만명 중 21%에 달하는 60세 이상 노인 가구의 절반 이상이 바캉스를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파리의 스포츠용품 판매점인 데카슬롱(Dacathlon)에 가면 손을 맞잡고 바캉스 용품을 구입하는 노인 부부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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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사의 해외 패키지투어 참가자도 노년층이 대부분. 60세에 정년퇴직을 하면 최고 마지막 월급의 80% 수준까지 매달 노후연금을 받는 프랑스에선 노인들의 주머니가 청장년층보다 두둑한 편이다. 독자적인 휴가는 상상할 수 없고 기껏해야 자식들에게 얹혀 휴가를 떠나는 게 보통인 한국 노인층의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볕이 잘 들수록 그늘도 짙은 법. 배우자를 떠나 보내고 홀로된 노인, 특히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바캉스 시즌은 일년 중 가장 괴로운 때다.

프랑스 언론들은 최근 가족들이 바캉스를 떠나면서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병원이나 요양원 등에 방기(放棄) 또는 방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이 없더라도 오갈 데 없는 노인으로 판단될 경우 단기간 입원시켜주는 프랑스의 의료 시스템을 악용, 병원 응급실에 노인을 버리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

2월 프랑스 보건부 발표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 인구의 6.6%인 80여만명이 신체적 자립능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노인들을 버리는 가족을 이해하는 시각 또한 프랑스적이다. 전문가들 가운데는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보살피기 위해) 1년 중 11개월을 고생하다 바캉스를 떠나는 가족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노인전문병원에 병상을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에서 병원에 노인을 버리는 행위는 서민들이 택할 수 있는 그나마 덜 위험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시민단체도 있다. ‘노인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프랑스지만 ‘천국’에서 지낼 수 있는 노인은 건강한 노인에 국한되는 걸까. phark@donga.com

박제균 /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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