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축구이야기]월드컵 붐 조성 이런저런 생각들

  • 입력 2002년 3월 13일 17시 28분


이제 80일도 남지 않았다. 분위기는 그럭저럭 고조되는 느낌. 방송에서는 ‘월드컵 특집’이 흘러넘치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요 하나같이 급조한 인상이다.

올림픽 때처럼 ‘국운’까지 걸 필요는 없지만, 또 그런 우격다짐이 통하는 시대도 아니지만 좀처럼 분위기가 뜨지 않으니 걱정이다. 입장권 판매만 해도 비인기 경기는 절반도 팔리지 않은 상태다.

자, 그렇다면 월드컵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기 위해 몇가지 처방을 상상해보자.

먼저 오프사이드 규칙을 없애 골맛을 높여본다면 어떨까.

1866년 잉글랜드가 처음 도입할 무렵에는 수비수 세 명일 때 적용했는데 이를 1925년에 수비수 한 명으로 줄였다. 그러다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때 공격수가 최종 수비수와 동일 선상일 때는 오프사이드가 아닌 것으로 손질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 바람에 골 수도 적어지고 종종 판정시비도 있으니 아예 없애버리자는 것이다. 공격수가 상대 골키퍼와 주식 얘기나 하다가 느닷없이 슛을 날리는 것이다. 꽤 재미있겠다.

그런데 수비수들이 모조리 자기 골문으로 물러서면 어떻게 하지? 아마 그 순간부터 중원의 축구, 속도와 공간의 축구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선수들은 무조건 공만 쫓아 몰려다닐 것이다. 그건 축구가 아니라 패싸움이다.

다음으로 페널티킥 규정을 바꾸는 것은 어떨까.

이를테면 현재처럼 11m로 되어 있는 거리를 20m 저 멀리 내보내는 것이다. 현재대로 라면 공이 골라인을 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0.4초. 골키퍼가 공의 방향을 보고 몸을 날리는 데 드는 시간은 0.6초가 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100% 성공해야 한다. 아닌게 아니라 몇 해 전 미국이 시도한 적 있다. 현재 아이스하키의 승부슛처럼 키커가 하프라인 근처에서 드리블해오고 골키퍼는 골문을 벗어나 전진 수비를 할 수 있도록 시도해본 것이다. 그랬더니 금세 열기가 식고 말았다. 축구의 신이 관장하는 운명적 승부를 한낱 재치게임으로 바꾸는 순간 페널티킥이 갖는 숙명적인 아찔함이 상실되고 그저 자장면 내기 동네축구로 전락한 것이다.

아, 이것도 안되겠다. 1분 작전 타임제를 도입하거나 4쿼터제로 바꾸는 것 역시 무리. 운명의 격전장에서 치열하게 부딪치는 전사들의 뜨거운 체온을 억지로 식히려는 모든 시도는 축구의 참맛을 잃게 할 뿐이다. 그 까닭에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는 경기 도중 음료수 타임을 줘야한다는 광고주들의 요구를 뿌리치고 “경기 도중에 선수가 알아서 틈틈이 챙겨 먹으라”고 결정하지 않았던가.

마지막 승부수. 치어리더를 동원하는 것이다. 농구장, 야구장, 자동차경주장까지 등장하는 판인데 왜 축구장에는 치어리더가 없느냔 말이다. 라면, 어묵, 국수 같은 토종 간식거리도 판매금지된 상황이니 치어리더의 다리 사이로 경기를 훔쳐보는 재미라도 없으면 어쩌란 말이냐. 마침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의 문화행사 담당자도 지난달 “치어리더에게 색동 저고리 유니폼을 입혀 세계인의 눈길을 끌겠다”고 밝힌 적 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다. 우선 축구는 경기 중간에 쉴 틈이 없다. 공을 쫓기도 바쁜데 치어리더라니. 게다가 짧은 치마에 색동 저고리 발상은 집단적 성희롱이 될 뿐만 아니라 그 감각조차 유치찬란하다.

그렇다면 결론은?. 축구는 그 자체로 박진감넘치는 경기라 잠깐 사진 촬영한 후 곧바로 경기에 들어가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원시적 에너지를 한껏 맛보기 위해 찾은 축구장에 문명화된 간섭과 제도 따위는 필요없다. 그저 불그스레한 옷을 입고 붉은악마가 가르쳐준대로 손뼉치고 함성 지르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다음엔 충혈된 두 눈으로 전사들을 지켜보자.

스포츠문화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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