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교수 NYT 칼럼]“철강 관세는 미국의 위선”

  • 입력 2002년 3월 8일 18시 09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경제학)는 8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수입 철강에 대한 고관세 부과 결정이 철강산업의 문제점도 해결하지 못할뿐더러 미국의 위선을 확인시켜준 ‘악수(惡手)’였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칼럼 요약.

“자유무역을 옹호한다고 말해온 부시 대통령이 고관세 부과 결정을 내린 것은 명백한 자기모순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민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의 도움을 얻어 자유무역에 대한 신념을 관철시킨 것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부시 대통령은 법을 집행한 것뿐이라고 주장했지만 고관세 부과를 강요하는 미 국내법은 없다. 국제 무역협정을 위반한 것이기도 하다.

국내 철강산업에 구조조정할 숨통을 터준 거라는 그의 주장도 타당치 않다. 철강산업은 사양산업이다. 경제가 더욱 서비스 지향 구조로 바뀌면서 철강 소비는 줄고 있다. 저가의 수입철강보다는 철강기업들의 퇴직자들에 대한 막대한 연금과 의료보험 부담이 국내 철강산업의 핵심적 문제다. 호황기에 결정된 이 비용을 사양기에 있는 지금의 기업들이 부담할 능력이 없다.

이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수입제한 조치보다는 정부 차원에서 철강업계의 비용을 적어도 일부분이라도 떠맡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거부했다. 그가 거부한 것은 이 비용을 떠맡으면 정부의 부담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만 보호주의 무역을 채택하는 데서 오는 비용은 거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의 조치는 ‘외교적으로도 악수(terrible diplomacy)’다. 가장 든든한 우방인 영국조차도 토니 블레어 총리가 나서서 ‘수용할 수 없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행동을 하라고 하면서 자신의 책임은 지려 하지 않아 위선적이라는 오명을 쌓아왔다. 미국의 자유무역주의가 공허한 수사학이라는 게 밝혀진 지금 누가 미국의 설교를 들으려 할 것인가.

분명히 하자. 부시 대통령은 원칙을 존중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가 그럴 것 같지 않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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