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대 함정3척 인도양 발진 현지르포]日 ‘군대부활’ 출정식 방불

  • 입력 2001년 11월 25일 18시 19분


《25일 일본의 자위대 파병은 합법적으로 자위대를 전쟁지역에 파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때문에 ‘자위대’가 아니라 ‘군대’로서의 위상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주변사태법’과는 달리 파견지역에도 제한이 없다. 일본은 마지막 금기로 여기고 있는 ‘평화헌법’의 틀 내에서 자위대를 파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 보유 및 교전권을 부인한 평화헌법의 의미는 희미해졌다. 자위대 파견이 실현됨으로써 일본은 다음 단계로 다른 국가에 대한 침략을 자국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해서 응전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 확보와 헌법개정으로 분위기를 몰고 갈 가능성이 있다. 자위대 함정이 발진한 요코스카(橫須賀) 항에서 그런 분위기를 물씬 느꼈다.》

25일 오전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스카(橫須賀)기지. 아프가니스탄 난민지원용 물품을 실은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소해모함(掃海母艦) ‘우라가’(5650t·승무원 112명)의 출항을 맞아 기지 전체가 시끌벅적했다.

‘우라가’ 앞에선 정부관계자와 자위대간부들이 참석한 출항식이 열렸고 바다쪽에서는 파견을 반대하는 선상데모가, 기지 정문에서는 이를 격려하는 우익단체들의 집회가 열렸다. ‘일본의 오늘’을 반영하는 축소판이었다.

오전 6시반경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기지 정문에는 ‘우라가’ 승무원을 배웅하기 위해 찾아온 자위대 가족 100여명과 내빈, 자위대 간부, 그리고 보도진 등 400여명으로 부산한 모습이었다. 정문 바로 옆에서는 대형 우익단체 차량 두 대가 주차해 있었다.

오전 7시경 가족들은 배에 올라가 전장으로 떠나는 자위대원들과 20여분간 대화를 나눴다. 하선하는 가족들은 “남편으로부터 ‘애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다” “몸 건강히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후 7시반경 갑자기 바다쪽에서 마이크소리가 들려왔다. 3, 4척의 소형배가 군함쪽으로 다가가며 ‘자위대 파병반대’ ‘전쟁으로는 테러를 근절하지 못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선상데모를 벌였다. 해상보안청 소속 함정들이 이들의 군함 접근을 제지했고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오전 8시11분 나카타니 겐(中谷元) 방위청장관이 선상에서 훈시를 했다. 그는 “이번 자위대 파견은 의연하게 테러에 대처하겠다는 일본의 결의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크게 주목하고 있다”고 격려했다.

순간 멀리 떨어진 기지 정문에서 방위청장관의 마이크소리보다도 더 큰 마이크소리가 들려왔다. 우익단체의 목소리였다. 이들은 “자위대 파견은 국제공헌의 길이고 외국이 일본을 인정하는 제1보가 될 것”이라며 “자위대원들은 일본의 대표로서 힘을 내라”고 외쳤다.

신조 케이(新城惠) 함장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겠다”고 인사한 뒤 방위청장관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군함은 오전 8시25분경 항구를 떠나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내빈, 자위대간부 등은 그 자리에 선채 ‘우라가’ 선상에 선 자위대원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일장기와 구일본해군기인 욱일기(旭日旗)를 벗어든 모자와 함께 흔들며 환송했다.

나카타니 방위청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떠나시는 분(자위대원)들의 눈이 빛나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욕이 넘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파견시기가 늦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미국도 장기전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며 “테러근절을 위해 계속해서 전력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배웅나온 가족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기념촬영에도 응했다.

자위대 파견에 대한 반대와 지지가 뒤섞여 있는 모습은 이날 오전 구레(吳)기지를 출항한 보급함 ‘도와다’, 오후에 사세보(佐世保)기지를 떠난 호위함 ‘사와기리’의 환송식에서도 똑같이 펼쳐졌다.

<요코스카〓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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