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자위대관련 개헌 발언 안팎]

  • 입력 2001년 10월 13일 18시 31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최근 ‘테러방지 특별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자위대를 군대로 인정하기 위한 환경정비에 나서야 한다”며 자위대의 권한 강화를 위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일부 야당 의원의 “전쟁에 자위대를 파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추궁에 “특별법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12일 한 민방TV에 나와 “자위대를 군대로 인정하면서도 무력은 행사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면서 “헌법 내용을 좀더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자위대의 위치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의 발언은 특별법 심의 과정에서 ‘자위대의 파견은 위헌’이라는 야당의 파상공격에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자위대는 전력(戰力)’이라는 발언에서 명백해진다. 일본 헌법 9조는 군대 보유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며 따라서 전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자위대가 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헌법 위반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고이즈미 총리의 생각이다.

일본의 중의원 참의원은 지난해부터 ‘헌법조사회’를 설치해 헌법개정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일본 총리가 자위대가 군대라는 점과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서 그의 발언은 헌법개정 움직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테러방지 특별법은 이 달 하순경에 국회를 통과한다. 이 법에 따르면 자위대는 미군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군대도 지원할 수 있고 제3국의 영토와 영공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 무기사용 기준도 훨씬 완화된다. 2년간의 한시법이지만 연장할 수도 있다. 적극적으로 전투에만 참가하지 못할 뿐이지 사실상 군대로서의 역할을 모두 수행한다.

자위대의 활동에 대한 한국측의 일관된 주장은 △평화헌법 내에서 △아시아지역의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투명하게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법에 따른 자위대의 활동은 이 세 가지 원칙 중 어느 것도 만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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