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사설]역사의 톱니바퀴 거꾸로 돌려서야

  • 입력 2001년 8월 15일 18시 38분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가 문제시되고 있는 이 여름, 56회 종전기념일이 돌아왔다.

전쟁의 비참함을 체험한 세대라면 평화의 고마움, 존귀함을 가슴깊이 느낄 것이다.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전쟁의 희생 위에 만들어졌다. 그러면 그 희생자들은 누구인가.

다른 나라의 희생을 생각지 않고 일본은 어떤 출발점에 설 수 있을까. 93년부터 종전기념 추도식에서 역대 총리가 아시아에 대한 가해 책임을 언급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그러나 추도식은 어디까지나 자국민 중심적이다. 전쟁 피해에 대한 보상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과 양국간 배상협정으로 전후처리는 끝났다”고 하지만 아직도 일본의 과거를 꾸짖는 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전후의 원점에서 돌아볼 때 아무래도 피할 수 없는 것이 히로히토(裕仁) 천황의 전쟁책임 문제다. 전후 도쿄재판에서 천황은 전쟁책임을 면했다. 그 대신 소수 전범들이 죄를 뒤집어썼다.

그 후 먹고사는 것에 필사적인 시대였다. 전쟁 기억을 떨치고 일하며 고도성장을 이룬 끝이 거품경제였다. 90년대 ‘잃어버린 10년’은 성공과 번영만을 추구하다가 빠진 함정이다.

계속 과거를 사죄하는 일본이 비굴하고 자학적이라는 반발의 소리도 있다.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자기희생이라는 아름다운 ‘국민이야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민족 자존심을 중시한 결과는 무엇인가. ‘순국(殉國)’을 미화하는 풍조가 무엇을 초래했는가.

내년에는 한일 공동개최 월드컵축구대회가 열린다. 양국의 이해와 우정을 다지는 좋은 기회이지만 교과서 문제 등을 둘러싸고 관계가 냉각되고 있다.

낡은 잎이 새 싹을 가로막고 역사의 톱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열고 타자(他者)와 공생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전쟁의 세기를 살아온 일본인의 역사와 자신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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