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8정상회의 현장]'G8' 최악 유혈시위로 얼룩

  • 입력 2001년 7월 22일 18시 52분


反세계화시위 첫 희생
反세계화시위 첫 희생
미국 러시아 등 주요 8개국(G8) 정상들은 22일 폐막된 G8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과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교토의정서 시행 등 핵심 현안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더구나 이번 회의기간 중 15만명의 세계화 반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사망자가 발생하고 300여명이 다쳐 사상 최악의 정상회의라는 오명이 붙게 됐다.

8개국 정상들은 사흘간의 회의 일정을 마치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교토의정서 비준 문제에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고 밝혀 회원국간 지구온난화 문제에 상당한 시각차가 있음을 시인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1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및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연쇄 개별회담을 가졌으나 MD 체제 구축 등 민감한 문제는 거론하지도 못했다고 미 관리들이 전했다.

핵심 현안의 타결 불발로 빛이 바래기는 했으나 G8 정상들은 경제문제와 지역문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합의를 이뤘다. 정상들은 21일 지역문제 회의를 마친 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정상회담 촉구 △중동유혈사태 종식을 위해 미첼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국제감시단 파견 △마케도니아 사태의 조속한 안정 △아프리카의 기아 및 에이즈 퇴치 기금 마련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정상들은 또 환자가 3600만명이 넘어선 에이즈 문제와 관련해 12억달러 규모의 에이즈 기금을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

정상들은 20일 첫날 경제회의를 마친 뒤 세계경제의 조속한 회복과 새로운 무역체제의 개설, 안정적인 국제금융체제의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그러나 회담 이틀째인 21일 회의장인 제노바 시내 두칼레궁 주변에서 15만명의 반세계화 시위대가 격렬한 시위를 벌이면서 큰 불상사가 생겼다. 시위대는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지고 차량을 불태우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맞서 제노바 시내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G8 정상들은 이탈리아 청년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즉각 유감을 표명하는 성명을 냈으며 부시 미 대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등은 개별적으로 이번 사태를 ‘비극’이라고 논평하며 충격을 표시.

이탈리아 내무부는 경찰의 발포로 사망한 사람이 로마 출신의 카를로 줄리아니(23)라고 밝히고 경찰이 정당방위 차원에서 발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 현장의 일부 취재진은 경찰과 유혈 충돌을 한 시위대가 반세계화 단체 소속이 아니라 일단의 무정부주의자일 수도 있다고 주장.

일부 시위대는 사망자가 쓰러져 핏자국이 남아 있는 곳에 꽃을 놓고 애도를 표했으며 ‘메이드 인 G8’이라는 쪽지를 남기기도.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된 사망사건 후 시위대는 몇 만명씩 집단을 이뤄 ‘암살자’ ‘살인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저지선을 향해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지고 차량에 닥치는 대로 방화. 시위대는 검은 완장을 차고 가두행진을 벌이며 사망자의 죽음을 애도.

일간 일 지오날레는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 회의부터 폭력화되던 시위대가 이제 순교자를 갖게 됐다”고 대서 특필. 이탈리아 경찰은 22일 새벽 시위에 참여한 800여개의 반세계화 단체 사령부격인 제노바 사회포럼의 프레스센터를 급습해 50여명의 시위대를 끌어내고 이중 시위를 주도한 프랑스인과 독일인 등 12명을 체포.

○…독일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 각지에서도 세계화와 이탈리아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시위가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 21일 독일 본과 뮌헨에서는 ‘환경과 인종문제에 인내를 촉구하는 단체’ 주도로 항의시위가 벌어졌으며 스위스 취리히에서도 이탈리아 관광홍보처에 화염병까지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

22일에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이탈리아 외교관 차량과 이탈리아 자동차회사인 피아트 및 알파 로메오 대리점 인근에 주차돼 있던 자동차 등 4대에 대한 폭탄 테러가 발생. 아테네 경찰은 150여명의 시위대가 이날 이탈리아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인 점으로 미뤄 폭탄 테러에 이들이 관련됐을 것으로 추정.

○…장 크레티앵 캐나다 총리는 다음 G8 정상회의는 세계화 시위 등을 고려해 내년 6월 26∼28일 캐나다 앨버타주의 로키산맥 중턱에 자리한 휴양지 카나나스키스에서 열기로 했다고 22일 발표.

크레티앵 총리는 "산악지역에 위치한 카나나스키스에는 350명분의 숙박시설 밖에 없다"며 "제노바 거리가 폭력시위로 얼룩진 것을 본 정상들이 다음 회의를 산악지역의 휴양지에서 개최하는 것에 동의했다" 고 설명.

그는 "내년 회의는 각국 대표단 규모를 줄임으로써 올해에 비해 규모가 크게 축소될 것" 이라며 "내년 회의에서는 아프리카의 빈곤 퇴치와 전세계의 교육기회 확대가 우선 과제로 다뤄질 것" 이라고 덧붙이기도.

<백경학기자·파리〓박제균특파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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