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김-백동일대령 눈물의 편지 교환

  • 입력 2001년 5월 11일 18시 22분


“가능하다면 선생님의 남은 교도소 생활을 대신함으로써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는 것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백동일씨)

“대한민국에 태어나신 죄로 평생 쓰라린 가슴을 안고 사셔야 하는 백대령 내외분께 운명을 같이 한 저로서 항상 안타까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로버트 김씨)

한국에 미국의 국가 기밀을 넘겼다가 간첩죄로 체포돼 4년반 째 복역중인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김(61·한국명 김채곤)씨.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하던 중 김씨로부터 기밀을 넘겨받은 장본인인 백동일(白東一)대령. 두 사람이 최근 상대방의 처지를 가슴 아파하며 위로를 전하는 편지를 교환했다.

2004년 7월까지 교도소에서 복역해야 하는 김씨의 고달픈 처지에 못지 않게 백씨의 상황도 딱하다. 그는 김씨가 체포된 뒤 ‘주한미군과의 접촉이 가능한 부서 근무를 피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한직에서 일하다 1월31일 32년간 정든 군복을 벗었다. 로버트 김 사건으로 장군 진급은 물론 전역 후의 생활마저 막막해졌다.

두 사람의 편지에는 ‘조국’을 위해서 일한 사람들이 ‘조국’으로부터 아무런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딱한 상황이 절절히 배어 있다.

먼저 편지를 보낸 백씨는 3월23일자 편지를 이렇게 시작했다. “저와 집사람은 필설로 형용치 못하는 심적 육체적 고통을 겪고 계시는 선생님과 옥바라지하랴, 가정 꾸리시랴 힘든 나날을 보내고 계시는 사모님을 하루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으며 그 고초를 함께 나누지 못하는 처지에 대해 원망까지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백씨는 “조국을 생각하며 조국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은 아무나 실행할 수 없는 고귀하고도 위대한 것이 아닐 수 없다”고 김씨를 위로하면서 “미국의 국익과 정책에 반하고 손상이 가는 일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결코 제2의 조국인 미국을 배반한 것도 아니다”고 적었다.

백씨의 위로 편지를 받은 김씨는 4월10일 감사의 마음을 담은 답장을 보냈다. 김씨는 “백대령이 대한민국과 미국의 편파적인 관계 때문에 희생을 당하고 한직에서 젊음을 보내신다는 소식을 듣고 이 시대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백씨가 진급을 하지 못하고 전역한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백대령이나 내가 우리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이러한 일을 했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며 “우리는 단지 대한민국이 조국이라는 공통된 배경을 가지고 만난 것이 아닙니까”라고 적었다.

백씨는 10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98년 8월 로버트 김에게 편지를 보낸 뒤 여러 제약으로 인해 다시 연락을 못해 마음이 불편하던 차에 전역을 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지만 힘을 내시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편지를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백씨는 김씨 가족의 생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퇴직금의 일부를 김씨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방형남기자>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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