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참배 선언 의미]日 "침략 반성" 마지막 성역 무너져

  • 입력 2001년 4월 17일 18시 48분


일본에서는 매년 8월 15일 종전일 (제2차 세계대전시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날)이 되면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른다. 또 총리 자격이냐 , 개인 자격이냐도 중요하다.

각료도 마찬가지. 신사 앞을 지키는 취재진은 참배를 마치고 나오는 각료를 붙잡고 어떤 자격으로 참배했는지 묻는다. 방명록에 '○○대신(大臣) ××××'라고 썼다면 공식 자격, 그렇지 않다면 개인자격 참배로 분류된다.

총리나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이처럼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곳에 제2차 세계대전 A급전범 14명과 전몰 군인, 군속 246만6000여명의 위패가 있기 때문.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은 일본 총리가 이곳을 공식참배하는 것을 '침략전쟁 부인'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96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총리가 신사를 참배한 뒤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일본유족회 등 우익단체와 보수파는 해마다 총리에게 신사를 공식참배하도록 요구해왔다. 그러나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총리들은 '개인사정'을 이유로 참배하지 않았다.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사실상 총리 선거) 후보들이 한결같이 "총리가 되면 공식참배하겠다"고 밝힌 것은 주변국 눈치를 더 이상 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의 반성의지를 상징해온 '성역'이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남은 '마지막 성역' 헌법개정도 중·참의원에 설치된 '헌법조사회'가 준동하고 있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자민당은 그간 주변국 눈치를 보지 않고도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수 있는 묘안을 모색해왔다. 'A급전범 분사 방안'과 '야스쿠니신사의 특수법인화'였다. A급전범 위패만 딴 곳으로 옮기면 총리가 일반 전몰자에 참배하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익은 'A급 전범' 자체가 전승국 멋대로 만든 것이라며 이에 반대하고 있다. 특수법인화 문제는 종교 성격을 없앤 '국립묘지 형태'와 신사 고유의 의식은 유지해야 한다는 '신도(神道)유지' 방안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신임총리가 신사를 공식참배하면 이런 논의는 무의미해진다. 총리의 공식참배 길이 한번 트이면 이내 관행이 될 것이고 지금껏 눈치를 보며 공식 참배를 하지 않던 각료, 사회지도층인사가 줄줄이 참배할 것은 틀림없다. 이번 자민당 총재 후보들의 신사참배 선언은 이런 까닭에 매우 큰 뜻을 갖고 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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