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불상 초토화…지구촌 경악

  • 입력 2001년 3월 2일 18시 32분


‘탈레반 정권의 불교 유적 파괴를 막아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1일 바미안 지역의 마애석불 등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평가되는 불교 유적에 대한 파괴를 강행함에 따라 지구촌이 충격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다.

탈레반 정권은 군인을 동원해 바미안의 마애석불에 로켓과 탱크 포탄을 퍼붓고 있다고아프가니스탄 정부 관리가 2일 밝혔다. 아프가니스탄의 AIP통신은 탈레반 정부가 이틀 전 석불 부근에 폭약을 쌓아놓았다고 전했다.

수도 카불에서 서쪽으로 125㎞ 가량 떨어진 바미안의 사암(砂巖) 절벽에 만들어진 두 개의 석불은 2세기경에 만들어졌으며 높이가 각각 53m와 37m로 세계 최대 규모. 두 석불은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탈레반 정권은 바미안을 봉쇄한 채 외국 기자들의 취재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물라 모하메드 카크자 탈레반 내무차관은 “아직까지 불상이 파괴되지는 않았다”고 확인했다.

탈레반 정권이 현재 반군과의 분쟁지역인 바미안을 봉쇄한 데다 특히 외국 기자들의 취재를 엄격히 통제해 불상 파괴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쿠드라툴라 자말 탈레반 정부 정보문화장관은 “파괴 작업이 끝나면 (봉쇄를 풀고) 외부에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탈레반 정권의 불상 파괴 소식이 전해지자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는 일제히 맹렬한 비난을 퍼붓는 한편 유적을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느라 부심하고 있다.

마쓰우라 고이치로(松浦晃一郎)유네스코 사무총장은 탈레반 당국이 불상을 파괴하지 말도록 설득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특사를 파견했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EU) 의장국인 스웨덴과 프랑스 독일 등은 탈레반의 결정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유럽연합(EU) 의장국인 스웨덴은 이날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유적은 모든 인류에게 소중한 자산”이라며 “탈레반 정부가 비극적인 파괴행위를 중단하기 바란다”고 밝혔으며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 대부분이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네팔 태국 스리랑카 등 아시아의 불교국가도 성명을 통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같은 이슬람 국가인 이란도 “유적 파괴 행위는 이슬람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것”이라며 이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의 맹방인 파키스탄조차 외무부 성명을 내고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마애석불 등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적인 유물이 보존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영국 대영박물관과 미국 뉴욕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유적이 파괴되는 것보다는 안전한 곳으로 옮겨져 보존되는 편이 낫다며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불교 유적 구매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아프가니스탄 국민도 탈레반 정권의 유적 파괴에 비판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리는 “파괴된 도시는 새로 건설하면 되지만 불상은 파괴되면 그만”이라며 “역사에 큰 죄를 짓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은 “우리는 그저 돌과 바위를 부수는 것인데 왜들 소란을 떠는지 모르겠다”며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불교유적 보고 아프간▼

아프가니스탄에 세계 최대 규모의 마애석불(磨崖石佛) 등 찬란한 불교 유적이 많은 것은 이 지역이 1500여년 전 불교 간다라미술의 개화지였기 때문이다.

‘간다라’는 인더스강의 지류인 카불강 하류에 자리한 평원지역으로 현재 파키스탄과 아프간의 일부 지역에 해당한다. 과거 인도의 쿠샨 왕조는 이 지역을 중심으로 불교 문명을 꽃피웠다.

특히 2세기경 활약한 쿠샨 왕조의 3대 카니슈카 대왕은 당나라 현장법사가 쓴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도 ‘가니색가’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정복군주이다. 카니슈카 대왕은 인도 파키스탄 아프간 등 서북 인도를 통일해 큰 위세를 떨쳤으며 간다라미술(기원 전후∼5세기경)이라는 불교문화의 번성기를 이뤘다.

간다라미술은 그리스와 인도의 미술이 조화를 이룬 것으로 이때 불상이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교도들은 이전까지는 부처를 보리수 등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했지만 간다라미술 시대가 찾아오자 불상을 통해 부처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는 서쪽인 그리스에서 건너온 갖가지 인체 조각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 그래서인지 아프간의 바미안과 가즈니 등지에 남아 있는 불상들은 다소 서양 사람의 얼굴 특징을 띠고 있다.

또한 아프간에는 바미안의 석불처럼 암벽에 새긴 불상이나 동굴을 뚫고 그 안에 조각한 불상들이 많다. 이 같은 양식은 페르시아의 부조미술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마애석불이라고 불린다.

마애석불 양식은 아프간 외에 인도에서도 볼 수 있으며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경주 두대리의 마애석불 등 갖가지 석불을 만들어냈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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