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種의 기원’ 현장 -기름오염 재앙

  • 입력 2001년 1월 25일 18시 48분


태평양상의 세계적인 생태계 보고, 갈라파고스 제도(諸島)가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유조선 침몰사고로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죽음의 검은 띠’가 해안으로 밀려들면서 자이언트 거북 등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이곳에만 서식하는 희귀동물이 죽어가고 있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제기한 명서 ‘종의 기원’을 쓰기 위해 연구했던 이곳의 생태계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사고〓에콰도르 남부의 과야킬항을 떠나 갈라파고스 제도의 가장 큰 섬인 산크리스토발 섬으로 향하던 유조선 제시카호가 16일 악천후로 암초와 충돌, 침몰했다. 배에 실려있던 110만ℓ의 디젤유는 사흘후인 19일부터 흘러나오기 시작, 25일 현재 80%가량인 85만ℓ가 유출됐다.

▽피해〓배에서 흘러나온 기름은 인근 산크리스토발과 산타크루스 섬 사이 1200㎢의 해역을 뒤덮고 있다. 거대한 기름띠가 두 섬의 해안으로 접근하면서 죽어가는 바다생물과 조류 수는 급격히 늘고 있다.

현재 펠리컨과 바다사자 등 수백마리가 숨졌다. 특히 이맘때면 알을 낳기 위해 해안으로 모여드는 희귀동물인 자이언트거북이 멸종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방제작업이 늦어지면 갈라파고스 펭귄과 작은날개 가마우지 등 세계적인 희귀동물 역시 다시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탄식하고 있다.

찰스 다윈의 역사적 연구활동을 기념해 산타크루스섬에 세워진 ‘다윈 생물종보존연구소’의 페르난도 에스피오자 소장은 “기름유출사고로 해양에 서식하고 있는 무척추동물이 죽고 있다”면서 “이 사고는 자칫 갈라파고스 제도 전체의 희귀동물 멸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대재앙을 경고했다.

▽대책〓에콰도르는 해군과 해양전문가를 동원해 부유망과 부표를 이용한 울타리를 설치하며 기름띠가 퍼지는 것을 막고 있다. 미국도 20일 대형 펌프와 바지선을 갖춘 방제전문팀과 해안경비대를 급파했다. 그러나 오염지역이 워낙 넓고 유출된 기름이 바다 속으로가라앉고 있어 방제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환경오염 우려 때문에 방제용 화학 약품을 사용하지 못해 방제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파비안 파라 갈라파고스 지사는 “지금까지 산타크루스 섬에 밀려든 기름 9100ℓ를 제거했지만 피해지역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며 세계적인 생태지역 보호를 위한 국제적인 지원을 호소했다.

<백경학기자·외신종합연합>stern100@donga.com

▼갈라파고스, 어떤 곳인가…찰스 다윈 '학문의 고향'▼

에콰도르 본토에서 서쪽으로 약 1000㎞ 떨어진 태평양상의 19개 섬으로 이루어졌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 속에 1832년 에콰도르의 식민지가 됐다.

세계적인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1835년 이곳에 정착해 연구한 결과를 ‘종의 기원’이란 책으로 펴내며 ‘진화론’과 ‘자연도태설’을 제기한 이후 생물학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활발했던 화산활동 때문에 깎아지른 높은 절벽이 많고 밀림이 울창해 인간의 발길이 쉽게 미치지 않은데다 기후가 온화해 각종 동식물의 보고로 알려졌다. 현재도 수명이 100년을 넘는 자이언트거북과 바다 이구아나, 펠리컨, 가마우지 등 80여종의 희귀동물이 살고 있으며 이곳에서만 발견되는 고유식물도 700여종에 이른다.

에콰도르 정부는 1959년 이곳을 국립공원과 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1968년에는 찰스 다윈의 업적을 기리는 한편 동식물 연구와 보호를 위해 다윈연구소가 산타크루스섬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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