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재일금융]부실채권-기득권 싸움이 '파산' 불러

  • 입력 2000년 12월 19일 18시 29분


한국계 신용조합인 간사이(關西)흥은과 도쿄(東京)상은이 ‘파산’이라는 최악의 상태에 놓인 직접적 원인은 부실채권이 늘어난 때문이다. 그러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각 신용조합의 안이한 현실인식과 새 은행설립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도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부실 원인〓99년 9월 당시 영업 중이던 26개 조합 중 20개의 총수신 규모가 400억엔 미만일 정도로 대부분 영세한 실정이었다. 게다가 거품경기 때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거액을 날린 것이 치명타가 됐다. 신용조합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사람을 대상으로 해 원래 위험부담이 크다.

담보 없이 대출해 주는 경우도 많다. 재일동포 사회의 3대 직업 가운데 하나라는 빠찡꼬업이 불황에 빠짐에 따라 대출금을 제때 회수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진 것도 부실을 부채질했다. 신용조합측은 “영세업자인 한국인을 돕기 위해 만든 금융기관이 일본 은행처럼 이것저것 따지며 대출해 줄 수는 없었다”며 어쩔 수 없는 사정도 있었음을 호소했다.

▽대책 논란〓한국계 신용조합을 살리기 위해서는 통합밖에 방법이 없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재일한국인신용조합협회(한신협·회장 이희건·李熙健간사이흥은회장)는 97년 당시 36개였던 신용조합을 6개로 통합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각 신용조합은 ‘우리 조합만은 살아 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결국 통합작업은 진척되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일부 기업인은 99년 중반 ‘상은을 지원하는 회’를 만들어 6개가 아닌 하나로 통합해 새로운 은행을 세우라고 촉구했다.

이같은 호소도 별 반응을 얻지 못하자 ‘상은을 지원하는 회’는 5월 ‘신규은행설립 전국발기인대회’를 열고 은행설립 작업에 독자적으로 착수했다. 그 후 새 은행의 이름을 ‘한일은행’으로 정하고 단체 이름을 ‘한일은행 설립추진위원회’(수석대표 손성조·孫性祖도쿄한국학교이사장)로 바꿨다. 이들은 재일동포뿐만 아니라 일본 자본까지 끌어들여 은행을 만든 뒤 2001년 1월부터 영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한국계 신용조합의 참여를 촉구했다.

그렇지만 한신협측은 이를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실체도 없는 사람들이 깃발만 들고 일을 하려 한다”고 몰아붙였다. 한신협은 이보다 한달 앞서 29개 신용조합을 통합해 새로운 은행을 설립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여서 양측의 대립은 불가피해졌다. 10월에는 규모 2위인 도쿄상은이 한일은행 설립추진위측에 가담했다. 한신협이 즉각 부회장인 김성중(金聖中)도쿄상은 이사장의 사임을 결의했고 양측의 대결 양상은 더욱 심해졌다.

한국정부는 누구 편도 들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한국정부가 팔짱만 끼고 쳐다보기만 해 문제를 더욱 키웠다는 말이 나온다. 민단은 한신협측을 지지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간사이흥은과 도쿄상은에 파산이 선고된 뒤 한일은행 설립추진위의 손성조 수석대표는 “금융당국의 결정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며 “출자자에게는 안됐지만 재일동포 전체가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민단 주도 아래 모든 재일한국인이 결집해 건전한 은행이 만들어져야 하며 이 일에 전면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한신협측은 이번 사태를 맞아 아직 이렇다할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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