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파리]“체면은 NO”… 佛 실용주의 열풍

  • 입력 2000년 10월 23일 19시 09분


컴퓨터회사에서 일하는 프랑수아(27)는 거리에서 잘 차려입은 아가씨를 볼 때마다 “참신한데(C’est cool!)”라는 한 마디를 빠뜨리지 않는다.

3년전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그의 친구들은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세련됐네(C’est chic!)”란 표현을 즐겨 썼다. 그러나 요즘은 영어에서 온 ‘쿨(cool)’이 유행이다. 시크(chic)란 한물간 말을 사용했다간 ‘늙은이’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미국에서 거세게 불어온 인터넷 열풍이 체면을 중시하고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프랑스 기업의 풍속도를 탈바꿈시키고 있다.

요즘 잘 나가는 벤처기업중의 하나인 추잉컴 닷컴의 직원들은 평일에도 캐주얼웨어를 입고 출근한다.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 동료는 물론 상사에게도 거침없이 ‘당신(vous)’ 대신 ‘너(tu)’라는 격의 없는 호칭을 사용한다. 심지어 사장을 E메일 ID로 부르기도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조차 힘든 변화다.

이회사 사뮈엘 탕 부장은 “생산성과 수익이 높아진다면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며 “호칭과 복장의 민주주의가 몰고 올 새로운 활력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는 17만개의 신생기업이 탄생했다. 96년만 해도 10억프랑에 불과하던 벤처캐피털의 규모는 지난해 인터넷 분야에서만 68억프랑으로 7배 가량 늘어났다.

이들 정보통신 분야의 벤처기업들은 직원들에게 티셔츠에 청바지 등 평상복차림 근무는 물론 가죽가방대신 어깨에 배낭을 매고 인라인스케이트나 킥보드로 출근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벤처기업에서 싹트기 시작한 실용주의는 대기업 최고경영자와 정치인들에게까지 전파되고 있다. 체면을 중시하는 이들이 즐겨 입던 비싼 정장 대신 캐주얼웨어를 유행시키고 있는 것. 우파인 자유민주당의 알랭 마들랭 대표는 요즘 남성우월주의의 상징이라며 넥타이를 벗어 던지고 공식 석상에도 양복 안에 폴로셔츠를 받쳐입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정재계 지도자들에게 자문을 하고 있는 심리학자 마리 루이즈 피어슨(58)의 저서 ‘가장 멋진 이미지 만들기’는 기업총수와 정치인들 사이에서 ‘바이블’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충고는 ‘쿨’하게 보이고 싶으면 단순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캐주얼웨어를 입되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

비방디 그룹의 장 마리 메시에 회장은 최근 대중주간지 파리마치와 회견할 때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촬영에 응했다가 구멍난 양말 때문에 발뒤꿈치가 드러나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이미지 변화의 열풍이 남긴 해프닝인 셈이다.

<파리〓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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