令 안서는 아라파트…강공책 수용등 위상찾기 고심

  • 입력 2000년 10월 11일 19시 08분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실추된 ‘위상 되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 달 28일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 아크사 사원에서 유혈폭력 사태가 발생한 이후 그의 권위는 눈에 띄게 떨어졌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거리투쟁’이 거세질수록 아라파트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심지어 아라파트가 이끌고 있는 파타 지도부가 내린 명령조차도 먹히지 않는 상황에 이른 것.

지난 주 ‘요셉의 묘’ 사건이 단적인 예. 당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휴전에 합의한 뒤 폭력행위를 자제하라는 명령을 내렸음에도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이스라엘의 성지 중 하나인 요셉의 묘를 점거, 약탈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이스라엘측에서도 아라파트의 사태 제어 능력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하마스’ ‘지하드’ 등 이슬람원리주의 단체의 영향력이 커졌음을 뜻한다. 이처럼 강경파가 득세하는 배경에는 팔레스타인 민초들의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

이런 대세를 거스르기 어렵다고 판단한 아라파트는 분노의 물결에 재빨리 순응했다. 지난주 하마스의 지도자 아메드 야신 등과 만나 향후 사태를 논의한 뒤 “이스라엘의 강경대응이 계속되는 한 평화는 없다”며 모처럼 한 목소리를 냈다. 아라파트는 중동평화협상에 방해될 것을 우려해 최근까지 이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10일 에후드 바라크 총리가 폭력중지 시한을 사나흘 정도 더 연장하겠다는 것을 아라파트가 딱 잘라 거부한 것도 같은 맥락. 아라파트 수반은 “이스라엘은 경고에 이어 또다른 경고만 내놓고 있다”며 일축했다. 그럼에도 그의 강경 태도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없는 ‘대내용’이라는 관측이 많다.

1993년 이츠하크 라빈 전총리와 ‘땅과 평화를 교환하자’며 오슬로 평화협정을 체결한 아라파트. 이후 그가 취해 온 온건한 행보로 미뤄 볼 때 갑자기 강경 투쟁노선으로 선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강경 일변도로 갈 경우 팔레스타인이 꼭 필요로 하는 미국이나 서방의 지원을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

아라파트는 9, 10일 중동지역을 방문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등과 직접 만나며 쏟아지는 ‘중재외교 특수’를 위상 회복의 계기로 활용하는 노련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