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로셰비치의 최종 선택은…해외망명 관측 제기

  • 입력 2000년 10월 8일 18시 52분


민중 봉기로 13년간 거머쥐었던 권력의 끈을 놓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 그의 선택은 여느 몰락한 독재자처럼 해외 망명도, 권총 자살도 아니었다.

그는 6일 여전히 유고 정계에 남아 자신이 이끌었던 세르비아사회당(SPS)의 당수로 지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은 이날 TV 방송에 출연해 “우리 당은 매우 강력한 야당으로 변모할 것이며 차기 선거에서는 승리를 얻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권력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또 혁명의 와중에서 자신에게 등을 돌린 측근들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토해내기도 했다.

민중 혁명으로 쫓겨난 독재자가 TV에 나와서 이런 연설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서방의 눈에는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현지 소식통들은 그가 세르비아 민중에게 ‘독재자’이긴 해도 ‘원수’는 아니라고 말한다.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워 권력을 유지해온 그는 한때 ‘세르비아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그를 실각시킨 것은 독재와 ‘인종청소’로 인한 국제적 고립과 경제 침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공습 등으로 인한 피폐와 빈곤이었다.

그렇다고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이 명실상부한 야당 당수의 위상을 지키리라고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국내 잔류’는 안팎으로 궁지에 몰린 그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

해외 망명을 택할 경우 ‘인종청소’ 등의 혐의로 헤이그 전범재판소에 기소돼 있는 그는 영락없이 ‘도망자’ 신세가 된다. 하지만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 못지않게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를 자처하는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 신임 유고연방 대통령은 “헤이그 재판소는 미국의 정치 도구에 불과하다”며 밀로셰비치 인도 거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6일 두 사람의 회동에서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은 순순히 권력을 물려주는 대신 국내에서의 안전을 보장받았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그럼에도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이 결국은 러시아나 벨로루시, 또는 중국처럼 ‘비적대적’인 나라로 망명할 것이란 관측은 끊이지 않는다. 그의 아들 마르코 밀로셰비치(26)가 7일 가족과 함께 큰아버지 보이슬라브 밀로셰비치가 대사로 있는 모스크바로 떠났다는 유고 베타통신의 보도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가 중국과 스위스에 거액의 비밀계좌를 갖고 있으며 자국 보유 금을 중국으로 빼돌리려 했다는 풍문도 돌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해 ‘발칸의 여우’로 불리기도 했던 그의 최종 선택은 과연 무얼까.

<박제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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