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英, 옥스브리지 '귀족 논쟁' 2라운드

  • 입력 2000년 6월 5일 19시 38분


한 공립학교 여학생의 옥스퍼드대 낙방을 계기로 일어난 파문이 영국을 뒤흔들고 있다. 융통성 없는 영국의 교육제도 비판으로 시작된 논쟁은 ‘계급론’을 거쳐 사회 각 분야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번지고 있는 것.

▼브라운 재무 "인재차별로 경제낙후"▼

존 프레스컷 영국 부총리는 4일 인디펜던트지에 “영국에서는 재능이 있지만 이른바 출신배경이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문호가 폐쇄돼 있다”며 “사회 각분야에 퍼진 특권과의 전면전을 펼쳐야 한다”고 기고했다. 옥스퍼드대 출신인 그는 “이번 논쟁의 핵심은 한 대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각 분야의 기회의 평등에 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원의원들을 ‘로드(Lord)’ 또는 ‘레이디(Lady)’라고 부르는 것도 구시대적 발상이므로 폐지하자고까지 주장했다.

맨먼저 이 문제를 들고 나왔던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3일 다시 재계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그는 3일 더 타임스지에 “기업들은 극소수 계층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진정으로 개방돼야 한다”며 “우수한 인재를 썩이는 경제는 낙후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옥스브리지(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중심의 채용관행을 정면 비판한 것.

귀족주의 전통이 강한 영국에서는 ‘옥스브리지’ 출신이 지배층이다. 2차대전 후 11명의 역대 총리 가운데 8명이 옥스브리지 출신이며 블레어 내각 23명 중 8명이 이곳 출신이다. 법조계 고위 행정관료를 비롯해 은행 및 회사 중역도 이들이 주류다.

옥스퍼드 출신인 토니 블레어 총리도 7일 정례 의회 기조연설에서 이번 논쟁에 가세할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 의료계 법조계 등의 어떠한 엘리트주의에도 반대하고 기회평등 원칙을 밝힐 예정. 미 워싱턴포스트지도 “일반대 출신 진출이 늘고 있지만 영국은 여전히 옥스브리지가 지배하는 곳”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지방공립校 수재 낙방시켜 파문▼

영국 집권 노동당은 사회 각 분야의 불평등을 강조해 다수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속셈도 있다. 야당인 보수당은 “노동당이 한 여학생의 특수한 경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영국 휘틀리 베이의 공립학교 출신 로라 스펜스(18·여)는 10과목 모두 A를 받았는데도 면접에서 옥스퍼드대를 떨어졌으나 미 하버드대에 지원해 장학금 6만5000파운드(약 1억3000만원)를 받고 입학이 허가됐다. 옥스퍼드측은 “그 학생이 말을 잘 안해 잠재력을 평가하기 어려웠다”고 밝혔으나 옥스브리지의 폐쇄성을 비판하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윤양섭기자> laila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