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칼럼]美 노조 이기주의 심하다

  • 입력 2000년 5월 21일 20시 27분


192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산당은 ‘전세계 노동자들은 백인 남아프리카를 위해 단결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캠페인을 벌였다.

이런 모토가 지금은 모순된 말처럼 들리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이 정치운동은 결국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의 흑인차별정책)로 발전됐지만 당시에는 강력한 민중선동적이며 사회적인 뿌리를 가지고 시작된 것이다.

남아공 공산당은 국제자본의 침략으로부터 남아공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운동은 적은 돈을 받으며 기꺼이 일하고자 하는 흑인노동자에게 국제자본가들이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백인노동자들의 배만 불려주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의 노동운동이 남아공 공산당처럼 노골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미국 노조지도자들은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목소리를 더욱 높여 수입에 반대하는 것은 사실상 제3세계 노동자들의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미국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인 셈이다.

미국 트럭운송노조의 제임스 P 호파 회장이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미국의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외국노동자들과의 경쟁을 강요당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제3세계의 경우 노동생산성이 낮고 사회간접자본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데다 경제발전 수준도 미약하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제3세계 노동자들이 미국인의 기준에서 최저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일자리를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미국 노동운동이 이처럼 도덕적인 파탄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는 일종의 비극적 필연성이 있다.

미국의 노동운동가들은 미국 노동자들이 그동안 부당한 대접을 받아왔다고 믿고 있으며 이는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실수입은 25년 전에 비해서도 적다. 그동안 육체노동자들이 미국 경제성장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구나 미국의 경제정책은 이같은 소득불균형을 더욱 심화시켜 왔다. 누진과세는 줄어들고 국공립학교 교육의 질은 더욱 열악해졌다.

경제학자들은 의료보험혜택을 늘려야 한다거나 수당을 인상해야 한다는 등 미국 노동자들을 위해 수많은 제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안들이 실현되기 어려운 몽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노조지도자들이 외국의 더욱 가난한 노동자들의 기회를 박탈해서라도 미국의 노동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노조지도자였다 해도 마찬가지로 보호주의자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인 전략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도덕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노동운동이 보다 순수한 길을 걸었으면 한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의 야욕만이 유일한 적이고 호파 회장 같은 사람들은 미국 노동자만이 아닌 전세계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숭고한 이상을 추구해왔던 미국의 노동운동은 현재 전세계 빈곤층의 이익에 반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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