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자본이 한국에 몰려온다

  • 입력 1999년 9월 26일 19시 58분


‘정비(구조조정)’를 마치고 ‘연료(자본)’를 가득 채운 유럽발 열차가 한국으로 달려온다.

최근 수년간의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면서 원기를 회복한 유럽 기업들이 해외진출에 활발히 나서면서 한국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반면 장기호황의 여세를 몰아 대한 투자를 주도해온 미국 자본은 올들어 힘이 빠진 상태.

한국 투자의 주도권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넘어간 양상이다.

▼올들어 43억달러 유입▼

▽주도권 역전〓올들어 8월까지 유럽연합(EU) 국가들의 대한 투자액은 43억1500만달러.

지난해 같은 기간의 16억400만달러보다 무려 169% 급증한 수치다.

반면 미국은 13억32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5억9000만달러보다 16.7% 감소했다.

전체 투자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유럽은 지난해 32.6%에서 올해(8월까지) 55.5%로 급상승한 반면 미국은 지난해 연간 33%에서 17%로 내려앉았다.

비싼 달러화를 들고 아시아 시장에서 ‘쇼핑 파티’를 벌이던 미국계 자본의 기세는 점차 찾아보기 힘들다.

▼투자액 미국 앞질러▼

미국―유럽자본의 비중이 뒤바뀐 것은 증권시장에서도 마찬가지. 지난해에는 5대3 정도로 미국자본 비중이 높았으나 올해는 유럽계가 우위를 보이고 있다.

▽기운차린 유럽경제〓이같은 역전은 무엇보다 최근 미국과 유럽경제의 상반된 동향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올해 2·4분기(4∼6월) 경제성장률은 1.8%로 1·4분기(1∼3월)의 4.3%보다 크게 떨어졌다. 반면 유럽은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성장률과 산업생산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옥영재(玉永在)구주팀장은 “올들어 유럽지역 기업들의 투자 문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양적으로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건수도 늘었지만 문의내용도 투자절차 등을 묻는 구체적인 내용이 많아졌다.

▼EU통합뒤 침체 탈출▼

이들과 접촉하는 유럽 현지무역관 관계자들도 “지난해만 해도 투자상담을 하자고 하면 관심을 보이지 않던 기업들이 올들어선 상담테이블에 마주앉기 시작했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산업자원부 박봉규(朴鳳圭)무역투자심의관은 “유럽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EU통합으로 투자여력이 많이 회복됐다”고 분석했다.

▼대부분 장기투자형▼

▽수익형과 투자형〓‘미국은 단기수익형, 유럽은 장기투자형.’ 일부 전문가들은 양측 비중의 역전을 자본의 성격에서 찾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대한 투자를 해온 미국은 장기적인 투자는 이미 거의 완료된 상태. 최근에 들어온 자본은 단기 수익을 노리는 펀드들이 많다.

반면 유럽은 이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는 입장. 한국 등 아시아 시장을 생산과 소비거점으로 설정하고 제조업 중심으로 진출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의 성격이 미국에 비해 장기적이고 건전하다. 다시 말해 ‘투기적 미국자본’에서 ‘투자형 유럽자본’으로 대한투자의 간판이 바뀌고 있는 셈.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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