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회담 합의이후/北의 핵-미사일카드]벼랑끝 전술

  • 입력 1999년 9월 14일 19시 07분


북한은 12일 타결된 베를린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카드로 한국전쟁 후 반세기동안 지속된 미국의 대북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미국이 적성국교역법에 명시된 적성국 리스트에서 북한을 제외하고 대북 경제제재도 크게 완화키로 한 것은 북한으로서는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북한은 준비단계에 있는 미사일 발사를 유보하는 조치만으로 이를 얻어냈기 때문에 미사일의 연구개발 생산 수출 등 다른 현안들은 앞으로도 대미협상을 위한 ‘바게인 칩’으로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이 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와 영변의 미신고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거부함으로써 촉발된 북핵위기를 94년 제네바합의로 해소한 이후 구사해 온 핵과 미사일을 앞세운 ‘벼랑끝 전술’이 이번에도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은 그동안 사회주의 국가들의 잇단 붕괴 속에서도 핵과 미사일을 내세워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부족한 식량을 획득해 왔다”고 지적하고 “그런 면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노력은 나름의 성과를 거둔 셈”이라고 평가했다.

대다수 북한전문가들은 핵 및 미사일카드의 효용을 여러 차례 실감한 북한이 앞으로도 이 카드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달 31일 ‘광명성 1호’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대포동 1호 미사일 시험발사 1주년 때도 “강성대국 건설의 첫 포성을 위성발사로 올린 것처럼 강성대국 건설의 완성도 위성발사로 경축할 것”이라고 호언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미국은 물론 한국 일본까지도 각종 대북한 현안들을 단계적, 포괄적으로 해결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어 북한이 앞으로의 협상과정에서 다시 상당한 소득을 챙길 가능성은 엄존한다고 보아야 한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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