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고구려후예들 『가갸거겨』…고마家의 뿌리찾기

  • 입력 1999년 5월 14일 19시 08분


1천3백여년전 일본에 정착한 고구려인의 후손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

일본 도쿄(東京)한국종합교육원 사이타마(埼玉) 분원은 히다카(日高)시의 고마(高麗)신사에서 매주 목요일 2시간씩 고구려 후손 19명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13일 첫 수업을 받은 고구려 후손들은 “고구려인의 혈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한국어를 못해 안타까웠다”며 열심히 글을 익혔다.

이들의 시조는 고구려 멸망 2년전인 666년 사절단으로 일본에 왔다가 정착한 고구려 왕족 약광(若光). ‘일본서기’와 ‘속일본서기’ 등에도 기록된 사실(史實)이다.

고구려의 귀족 승려 등은 고구려 멸망후 일본 시즈오카(靜岡)의 스루가(駿河), 가나가와(神奈川)의 사가미(相模) 등 7곳에 집단정착했다. 야마토(大和)정권이 716년 고구려 유민 1천7백99명을 지금의 히다카시로 이주토록 하면서 고려군(高麗郡)이 탄생했다. 초대 군수가 약광이었다.

약광의 직계후손은 성을 고마로 정하고 대대로 고마신사에서 살아왔다. 지금은 59대손 고마 스미오(高麗澄雄)가 정통후계자를 뜻하는 규시(宮司)라는 직함으로 가족 4명과 함께 신사를 지키고 있다.

1259년 화재로 고마일가의 가계도가 소실돼자 흩어져 살던 고마 일족이 다시 모여 가계도를 작성했다. 이때 고마이(高麗井) 아라이(新井) 아타라시(新) 혼조(本所) 간다(神田) 나카야먀(中山) 가토(加藤) 요시카와(吉川) 후쿠이즈미(福泉) 오카노보리(丘登) 오노(大野) 시바키(芝木) 등이 참여한 점으로 미루어 이들 성씨도 고구려 후손일 것으로 추정된다.

고마신사측은 “직계만 고마라는 성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고구려의 후손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마씨는 약광이래 5백여년간 고구려인끼리만 결혼을 했으며 한때 독특한 산악신앙을 발전시킨 슈켄도(修驗道)라는 계율을 지키기도 했다. 14세기에는 무사들의 전쟁에 휘말려 곤란을 겪은 뒤로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것을 가훈으로 삼고 있다.

이들이 1596년에 지은 고려가(高麗家)와 고마신사에 보관된 13세기의 필사본 대반야경(大般若經)은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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