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휩쓰는 「살육狂風」]

  • 입력 1999년 3월 30일 19시 31분


《“세르비아계 민병대와 경찰이 코소보주(州) 알바니아계 마을을 습격해 주민을 학살하고 있다. 화염에 휩싸인 가옥에서는 통곡 소리마저 새어 나오지 않고 있다….”코소보의 비극이 시시각각 숨가쁘게 타전되고 있다. 죽이는 사람들과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 그들에게도 중심인물이 있다. 알바니아계 주민에 대한 ‘인종 청소’는 아르칸이라는 40대의 세르비아계 남자가 현장에서 지휘하고 있다. 그들의 총구 앞에서 60대의 알바니아계 인텔리 지도자 페힘 아가니도 28일 무참히 쓰러졌다. 아르칸과 아가니. 그들을 통해 코소보의 참상, 나아가 ‘발칸 전쟁’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이 지옥의 살육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 학살자 아르칸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 학살 현장에 거의 빠짐없이 나타나는 ‘인종청소 대행업자’. 의미는 확실치 않지만 ‘아르칸’으로 불린다.

국제형사재판소(ICTY)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아르칸의 신상은 이렇다.

‘본명 젤리코 라즈나토비치. 45세. 91∼95년 구 유고연방지역 내 비(非)세르비아계 민족 학살을 주도.’

이슬람교도와 크로아티아인을 무차별 학살하고 부녀자들을 강간한 혐의로 세계 인권단체들로부터 악질 전범으로 이미 지목됐다. 은행강도 전과도 있다. 그래서 국제경찰(인터폴)의 수배를 받고 있다.

그가 이번 ‘발칸 전쟁’에서 다시 악명을 떨치고 있다. ‘호랑이들’이라는 이름의 세르비아계 민병대를 이끌고 알바니아계 주민 학살을 주도하고 있는 것. 알바니아계 주민은 아르칸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떤다.그러나 세르비아인들은 그를 열렬한 애국자로 떠받들고 있다. 세르비아인들의 지지로 그는 세르비아 의회 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축구클럽을 운영하고 인기 여가수와 결혼도 했다.

로빈 쿡 영국 외무장관은 29일 “‘호랑이들’은 유고군대와 하나가 돼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유고측이 청부살인집단을 코소보에 불러들였음을 시사한 것. 그들의 지휘자도 아르칸이다.

◇피살자 아가니

코소보 프리슈티나에서 세르비아 경찰에 학살 당한 알바니아계 지도자 페힘 아가니(66). 그는 사회학을 전공한 온건파 지식인이었다. 알바니아계 주민들에게는 ‘은발의 대학교수’로서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발칸 전쟁’ 첫날 세르비아 경찰이 살해한 알바니아계 인권변호사 바즈람 켈멘디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변을 당했다. 기자 작가 등도 함께 희생됐다.

아가니는 2월 프랑스에서 열린 코소보 평화협상 때 알바니아계 대표단의 일원이었다. 코소보의 완전독립을 요구하며 협상안을 거부하던 다른 대표단원을 설득해 협상안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다.

세르비아공화국 자코비차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알바니아계 동족의 비극적 운명에 눈을 떴다. 60년대 이후에는 코소보가 일단 독립한 뒤에 유고연방의 공화국이 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를 위해 코소보민주연맹(DLK)을 결성했다. 강온양면 전략을 구사하고 현실과 원칙을 조화하자는 것이 지론이었다. 알바니아계 정치인들도 그를 초당적으로 신망했다.

지난해 10월 그는 “코소보 사태의 해결책은 유고로부터의 완전독립”이라며 “국제사회의 도움 없이 자유를 찾을 수는 없지만 투쟁은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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