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訪韓/대북정책 조율]「先당근-後채찍」입장정리

  • 입력 1999년 3월 10일 07시 34분


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이 9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당국자와 일련의 협상을 가지면서 이달말 작성 예정인 페리보고서의 성격도 보다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이견을 보여온 한미 양국간 입장이 상당히 조율된 듯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북한이 대북포용정책을 거부할 경우의 ‘인내한계선(Red Line)’설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양국간의 이견은 ‘채찍’을 강조한 미국측의 입장이 보다 강화되는 쪽으로 정리되는 듯한 분위기다.

페리보고서도 미국의 대북정책결정을 위한 단순 보고서가 아니라 미국과 한국 일본 중국 등이 향후 북한을 상대로 벌일 ‘협상안’의 성격이 짙어지고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페리보고서는 검토과정이 끝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가지고 북한과 교섭을 해야 하는 만큼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해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대북교섭의 목표는 우선적으로 북한이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북한에 경제제재완화와 대미수교 경제협력 등의 선물을 주는 포괄적 접근방식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페리보고서가 작성된 뒤 한미 양국은 특사를 북한에 보내 보고서에 담길 협상안을 가지고 구체적인 협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북한의 태도에 따라 많은 ‘경우의 수’가 생길 것이며 한미 양국과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은 수시로 협의과정을 거쳐 협상의 진도와 단계를 결정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문제는 한미 양국이 북한측의 반응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 다음 대응전략을 세우느냐에 있다. 북한이 대북포용정책을 거부할 경우 ‘레드 라인’에 대한 양측의 시각은 또다시 달라질 수도 있다. 정부는 한반도의 냉전체제 종식과 평화정착이라는 인식틀을 사용하고 있고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급적 ‘당근’만을 얘기하던 정부가 페리조정관 방한 이후 ‘채찍’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는 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끊임없이 주문해온 미의회, 특히 공화당 보수파를 설득하려는 미 행정부의 입장을 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전쟁이나 국지공격 등 자극적 방안이 포함되진 않겠지만 포용정책을 거부하는 북한에 대한 다양한 제재조치들이 페리보고서에 포함될 전망이다.

아무튼 강도높은 포용정책이 1차적으로 취해진 뒤 “그 다음은 그 때 가서 보자”는 게 정부측의 속셈인 듯하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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