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정상회담]「과거사 사죄 앙금」남겨

  • 입력 1998년 11월 26일 19시 39분


장쩌민-日前총리 6명 간담
장쩌민-日前총리 6명 간담
장쩌민(江澤民)중국국가주석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일본총리의 26일 도쿄(東京)정상회담은 ‘절반에 못미치는 성공’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정부는 당초 장주석의 방일이 껄끄러운 두 나라의 과거사문제를 매듭짓고 ‘21세기를 향한 동반자관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를 위해 일본은 3천9백억엔의 엔차관 제공과 환경 및 에너지정책 지원 등 ‘당근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과거사 청산과 미래지향적 관계구축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 일본의 기대는 과녁을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과거 어느때보다도 ‘역사문제’에 강한 집착을 보이면서 양국 정상의 공동선언이 서명 없이 발표되는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미래의 동반자관계’가 ‘역사의 앙금’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25일 밤 하네다공항에 도착한 장주석이 “과거를 직시하자”고 강조할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도착성명에서 “중일관계의 역사경험을 진지하게 총괄하는 것은 미래를 향한 양국 우호협력의 발전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분명한 입장표명을 기대했다.

그는 26일 오전 일본 전직총리 6명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역사를 잊지 않고 새 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게 소중하다”며 95년 전후 50주년을 맞아 아시아에 대한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종전보다 깊게 반성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전총리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일본이 공동문서에 ‘침략’과 ‘깊은 반성의 뜻’을 넣되 ‘사과(오와비)’는 말로만 하겠다고 고집하자 장주석은 결국 공동선언의 서명을 거부하는 초강수로 대응했다.

중국측은 지난달 한일정상회담에서 일본이 ‘사죄’의 뜻을 문서에 명기하고도 중국에 다른 자세를 보이는 것에 불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측은 △72년 중일공동성명에서 “책임을 통감하고 깊게 반성한다”고 명기했고 △92년 천황의 중국방문 때 “다대한 고난을 준 데 대해 깊이 슬퍼한다(深感痛心)”고 말했다며 한국과 중국을 같은 반열에 놓고 과거사를 다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특히 한국정부가 과거사문제를 일단락하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반면 중국은 “이번에 사죄한다 해도 일단락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자세를 보이는데 대해 불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또 공동문서에 사죄를 담을 경우 중국이 한 걸음 나아가 전후 배상문제를 들고 나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과거사와 관련해 지금까지 한국보다 다소 낮은 강도로 일본을 비판하며 아량을 보여왔으나 이번에는 한국보다 훨씬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장주석의 방일이 9월에서 11월로 연기되면서 그 사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과거사 문제를 먼저 정리해버림으로써 한국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아쉬움도 깔려 있는 듯하다.이에 따라 앞으로 중일관계는 실무 분야에서의 협력은 확대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를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도쿄〓윤상삼·권순활특파원〉yoon332@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