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모라토리엄 1백일]『먹을게 없다』 최악의 겨울

  • 입력 1998년 11월 25일 19시 17분


러시아가 대외채무지불유예(모라토리엄)선언 및 루블화 평가절하를 발표한 지 25일로 1백일을 맞았다.

그동안 러시아의 정치 경제적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다 식량난까지 겹치고 혹한까지 밀어 닥쳐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 더구나 투병중인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국정수행이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 계속되면서 지도력 부재까지 겹쳐 러시아 상황은 혼미를 더해가고 있다. 외국언론들은 “이번 겨울은 러시아에 2차대전후 최악의 계절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전하고 있다.

▼경제상황〓러시아가 선언한 대외채무의 지불유예기간이 15일로 만료됐지만 외화사정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러시아가 내년까지 갚아야 할 외채는 민간부문까지 포함해 4백60억달러. 이중 정부가 갚아야 공공부문외채는 1백75억달러다. 반면 현재 러시아의 외환 보유액은 1백35억달러에 불과한 형편.

러시아가 내심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의 2차 지원금 43억달러. 그러나 IMF와의 금융지원협상도 24일 결렬됐다. IMF는 세수확대와 정부지출 축소등 내년도 예산안의 긴축을 요구하고 있으나 러시아는 실업자구제문제등을 들어 이에 반대하고 있기때문.

다만 모라토리엄 선언후 한 때 극심한 혼란을 빚었던 물가는 다소 진정된 상태.

▼식량부족및 혹한〓러시아의 89개 지역중 22개 지역에서 이미 식량부족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알렉산드르 레베드 크라스노야르스크 주지사는 “일부 지역의 경우 기아현상까지 이를 가능성이 있다”며 심각한 식량난을 시인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지역의 경우 외부 식량지원 없이는 이번 겨울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식량난의 가장 큰 원인은 흉작.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러시아의 올해 곡물수확량이 4천7백만∼5천2만t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8천6백70만t에 비해 절반 가량 줄어든 양. 흉작의 원인은 물론 전세계적인 기상이변에 따른 가뭄이다.

또다른 원인은 루블화가치의 폭락. 곡물의 40%이상을 수입에 의존해 왔던 만큼 루블화의 가치하락에 따른 수입량 감소도 식량난을 부채질한 것.

상황이 심각해지자 러시아 정부는 미국등 외국에 긴급 식량지원을 호소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밀 1백만t, 곡물 50만t, 쌀 3만t, 돼지고기 10만t, 쇠고기 15만t 등을 무상으로 지원키로 했다.

미국도 3백만t규모의 식량지원을 하기로 했다. 이중 1백5만t의 밀은 무상으로, 나머지 쌀 옥수수 육류 분유 등은 20년 상환이라는 매우 유리한 조건.

연료부족도 심각한 문제. 러시아 에너지부는 최근 북부지역의 경우 필요한 연료의 3%만이 확보된 상태라고 밝혔다.

▼정치상황〓옐친대통령은 지난달 말 예브게니 프리마코프총리에게 내정을 이양하고 자신은 국방 외교 등에 주력하기로 했지만 건강 악화로 이마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고 ‘차기’를 노리는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 반유태주의발언 등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등 정국은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20일에는 대선출마를 선언한 여성 중진 의원 갈리나 스타로포이토바가 살해돼 러시아는 또 한번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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