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외환시장, 헤지펀드 손에 널뛴다

  • 입력 1998년 10월 9일 19시 15분


국제외환시장이 헤지펀드(단기적 투기자본)의 주도 아래 ‘광란의 거래양상’을 보이면서 극심한 혼란을 보이고 있다.

7,8일 국제외환시장에서는 일본 엔화가치가 24시간만에 각각 10%, 15%씩 오르는 극단적인 폭등세가 나타났다. 이같은 하루상승폭은 고정환율제가 붕괴된 71년 이후 사상 최대기록이다.

8일 뉴욕시장의 달러당 엔화환율 1백19.05엔은 엔화가치가 8년만의 최저치였던 8월11일의 1백47.66엔에 비해 약 두달 만에 24%나 절상된 수준.

일본과 미국의 중앙은행이 엔화약세를 막기 위해 공동개입해 엔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6월17일의 환율변동폭도 달러당 7엔에 불과했다.

국제금융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은 엔화폭등이라기 보다는 달러폭락”이라며 미국의 경기침체와 추가금리인하 가능성 등이 요인이 됐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엔고(高)는 일시적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또 아시아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러시아를 거쳐 미국에 상륙한 신호탄이라는 설명도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는 8일 달러화가 엔화 뿐 아니라 독일 마르크, 프랑스 프랑에 대해서도 일제히 약세를 보인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가치가 안정돼있다는 핵심 기축통화들이 하루에 10%이상씩 등락하는 극단적인 거래양상을 보인 핵심 요인은 따로 있다. 전문가들은 “살짝 기운 저울추를 땅바닥으로 내팽개친 장본인은 바로 헤지펀드”라고 지목한다.

‘엔화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는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헤지펀드들은 단기적으로는 엔화약세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너나없이 엔화선물(先物)을 팔아왔다.

그러나 달러약세로의 반전이 생각보다 빨라질 징후를 보이자 헤지펀드들은 앞다퉈 달러를 내다팔면서 엔화확보에 나섰다.

즉 실물경제 기초여건(펀더멘털)의 사소한 변화가 수십배 증폭되면서 시장이 불안심리에 의해 움직이는 일종의 공황현상이 나타난 것. 헤지펀드에 의해 지배되는 국제금융시장이 얼마나 불안정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인 셈이다.

시장의 불안정성은 일본에서 ‘주가폭락과 엔화가치 폭등의 공존’이라는 기묘한 현상이 나타난 데서도 잘 드러났다. 개방경제에서 통화가치와 주가는 함께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인데도 8일 ‘극단적인 엔화강세’ 속에서 닛케이주가는 올들어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도 8일 “합리성이 최근 시장의 명백한 특징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위기상황에 직면해있다”며 헤지펀드에 의해 주도되는 금융시장의 취약성을 경고했다.

국제금융시장을 교란한 헤지펀드 문제는 앞으로 거래정보 공개와 금융감독 강화의 필요성 등 많은 논란을 불러올 전망이다.

〈허승호기자〉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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