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日정국]간대표『日,과거사 인정-반성해야』

  • 입력 1998년 4월 27일 20시 21분


27일은 일본 정치사에 ‘의미있는 날’로 기록될 듯하다. 이합집산을 거듭하던 4개 야당이 민주당 깃발 아래 뭉쳐 강력한 제1야당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57%가 정권교체를 지지하는 상황인 만큼 시민운동 출신의 신세대 정치지도자인 간 나오토(菅直人)민주당대표에 대한 일본국민의 기대와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95년 일본열도를 뒤흔들었던 ‘약해(藥害) 에이즈사건’이 터졌을 때 그는 자신이 장관으로 있는 후생성의 잘못을 낱낱이 파헤쳐 발표했다. 일본국민은 신선한 충격을 느꼈고 그는 단번에 ‘국민적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는 일본정계에서 ‘거물’이 되는데 필요하다고 일컬어지는 ‘배경’과는 거리가 멀다. 유력정치인의 후예나 엘리트관료 출신이 아닌 것은 물론 도쿄공업대(도쿄대와는 다름) 출신으로 일류대학도 나오지 않았다.

더욱이 그는 일본정계에서는 중진급에도 미달하는 ‘6선’의 경력이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감’ 1위, ‘차세대 지도자’ 1위를 달리면서 드디어 제1야당을 이끌게 됐다.

최근 방일한 고려대 최상륭(崔相龍)교수가 새 당 출범준비에 바쁜 간 대표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 그의 정치관 등을 들어보았다.

―야4당이 합쳐 강력한 (신)민주당을 만들었습니다. 민주당은 자민당과 어떻게 다릅니까.

“자민당은 상대방 정당을 금세 흉내내는 이른바 ‘카멜레온 정당’이기 때문에 차이점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민당이 내놓은 10조엔 감세대책은 이전에 우리가 내놓았던 경기부양대책을 본뜬 것입니다. 그러나 구조개혁에 대한 접근방식은 확연히 다릅니다. 기득권을 어떻게 나눠먹느냐는 등의 배분만 얘기하고 있는 자민당에 의한 구조개혁은 불가능합니다.”

―(신)민주당과 (구)민주당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별로 변한 게 없습니다. 굳이 말한다면 종전 민주당 노선을 더욱 강화 발전시키는 것으로 정부의존도를 줄여 좀 더 ‘강한 개인’과 ‘강한 기업’을 만든다는 목표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한 정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정당이 한마디로 국민을 위한 도구가 돼야 합니다. 국민의 의사를 정당의 정책에 직접 반영하는 길, 즉 정치참여의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 후진타오(胡錦濤)중국국가부주석 등 새로운 정치지도자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젊은 지도자의 등장은 세대가 바뀌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각국에 공통적인 새로운 흐름이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자유와 안심(安心)과 분권입니다.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주의’라 할까요.”

―후생상시절 관료체제 개혁에 열의를 보여 용기있는 정치가로 명망을 얻었지요. 일본 관료구조 개혁을 위한 계획은 있습니까.

“일본은 헌법상 내각이 행정권을 갖고 있습니다. 내각은 100% 관료에 의해 컨트롤되는 형태입니다. 이를 국민의 내각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입각했을 때 비서관 1명을 데리고 후생성에 갔는데 7만6천명의 관료들에 포위당한 꼴이었습니다. 사무차관 이하 관료들은 정보제공은커녕 무엇이든 열심히 숨겼습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영국식으로 장관이 전문 스태프를 데리고 성청(省廳)에 들어가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최근 한일관계가 매우 어색합니다.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은 새 정권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으며 일본으로서도 새 시대에 알맞은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기회입니다. 과거사와 관련한 역사적 진실에 대해 일본은 인정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김대중정권 탄생에 맞춰 일본이 어업협정 파기라는 ‘선물’을 준 것은 시기상 나빴습니다. 냉정을 되찾아야지요.”

―한국정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지원금 지급을 결정했고 일본정부에 대해 성실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후생상시절 아시아여성기금 이사장으로부터 위안부 문제를 설명듣고 해결책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습니다. 일본이 반성해야 할 것은 반성해야 합니다.”

―동북아지역에는 다자간 안보협력체제가 없습니다. 한일 양국이 주도하면 이 지역 평화와 안전보장에 기여하리라고 보는데….

“일본에 6만명, 한국에 4만명등 약 10만명의 미군이 아시아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미, 미일간에는 안전보장 체계가 있지만 한일간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미군을 포함한 공통의 한일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키나와(沖繩)미군기지 축소문제만 해도 일본 국내문제로만 취급하지만 이는 한국에도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아시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일본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선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통한 내수확대와 경기회복 정책으로 아시아 각국으로부터의 수입을 늘리도록 해야 합니다. 일본이 잘못하면 아시아 경제는 공황에 빠지고 이는 세계적 규모로 발전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정리·도쿄〓윤상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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