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97]「신화」를 남기고 떠난 「연인」 다이애나

  • 입력 1997년 12월 28일 19시 58분


지난 8월31일 새벽녘 파리에서 날아든 다이애나 전영국왕세자비(36)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은 지구촌을 경악과 비통에 빠뜨렸다. 지난해 찰스왕세자와 정식으로 이혼한 뒤 한동안 침잠했던 그는 올들어 앙골라와 보스니아를 잇달아 방문하고 불우이웃을 위해 드레스를 경매하는 등 사회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이날 밀애설이 파다했던 이집트 출신의 백만장자 도디 알 파예드(42)와 승용차를 함께 타고 센강변을 달리다 교통사고로 삶을 마감했다. 특히 그와 도디가 탔던 승용차는 유명인사들의 사생활을 카메라에 담는 이른바 파파라치들의 추적을 당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언론자유의 한계에 대한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61년 몰락한 귀족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나 유치원에서 보모로 일하던 그는 20세에 왕위계승권자인 찰스왕세자와 결혼해 현대판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에게 결혼의 행복은 짧았고 불행의 그림자는 길었다. 불륜 별거 이혼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두눈을 내리뜬 채 짓는 수줍은 미소」가 트레이드 마크인 다이애나는 뛰어난 미모와 패션감각으로 명실상부한 사교계의 스타였던 반면 이때문에 세인의 관심으로부터 단 한 순간도 자유롭지 못한 「새장속의 새」였다. 화려한 외양에 감춰진 불운한 사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우한 어린이와 환자를 위한 자선사업에 헌신했다. TV 대담에서 자신의 불륜을 시인하는 등 언제나 당당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 논란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다이애나의 죽음은 여러가지 신기록과 화제를 양산했다. 9월6일 치러진 그녀의 장례식에는 6백만명의 애도인파가 몰려 윈스턴 처칠 전영국총리 장례식때의 인파를 넘어섰다. 엘튼 존이 부른 추모곡 「바람속의 촛불」은 올 음반판매 1위를 차지했다.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영국인들이 쇼핑을 자제하는 바람에 소비자 매출이 급감, 「다이애나 효과」라는 경제현상을 낳기도 했다. 사람들은 왜 다이애나에게 열광했는가. 왕세자비, 불륜과 인도주의적 행동, 왕실의 규격화된 규범의 일탈, 젊은 나이에 요절 등 「신화적 요소」를 갖추고 있었고 더없이 화려했지만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비극성이 사람들의 가슴에 아련하게 다가갔기 때문일까. 〈정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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