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셰 「중저가」전략 회사구했다…日人간부 영입 원가절감

  • 입력 1997년 12월 14일 19시 57분


「적어도 한해 2백만대는 생산해야 경쟁력이 생긴다」며 생산시설 증대에 혈안이 됐던 한국 자동차3사. 이들의 주장을 무색케하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의 연간 생산능력은 불과 4만대. 「명품의 대명사」로 불리며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포르셰가 바로 주인공이다. 지난한해동안23억달러어치를 팔았고 7천9백만달러의 이익을 남겼다. 대당 평균 5만7천달러에 팔았고 2천5백달러를 이윤으로 챙긴 셈. 포르셰는 수년전까지만해도 3억달러의 누적적자에 허덕이던 기업이었다. 포르셰의 혁명이 시작된 94년, 41세의 엔지니어 반델린 비데킹이 사령탑에 앉았다. 그의 첫 조치는 일본 도요타 출신의 베테랑 기술감독 두명을 긴급영입한 것. 「여기가 바로 자동차기술의 본고장」임을 내세워 반대하는 이사진에게 『부족하면 누구에게라도 배워야한다』며 밀어붙였다. 포르셰는 영입파를 중심으로 군살제거에 나섰다. 종업원을 20% 감축했다. 재고비용 최소화를 위해 일본식 저스트―인―타임(Just―In―Time)시스템을 도입했다. 원가절감은 가격인하를 낳았다. 911시리즈 가격을 최저 5만달러 수준까지 20%가량 떨어뜨리자 95년 매출액이 3년전보다 4배로 늘어났다. 96년엔 3만달러로 「저렴」하면서도 포르셰의 개성을 간직한 2인승 오픈카 「박스터」가 개발됐다. 요즘 박스터를 사려면 주문후 9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김승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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