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妻 「斷腸의 세월」…북송 1천8백명중 66% 사망

  • 입력 1997년 10월 6일 20시 25분


북한에 둔 가족을 몇십년간 만나지 못해 이산의 한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이들은 비단 한국의 이산가족들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인 남편을 따라 북한에 간 일본인처의 가족들이 비슷한 단장의 아픔을 겪고 있다. 북한과 일본은 지난달 9일 베이징(北京) 적십자연락협의회에서 북송 일본인처의 1차 고향방문에 합의, 10여명의 일본여성들이 몇십년만에 처음으로 곧 고향땅을 밟을 예정이다. 이들은 59년12월부터 84년7월까지 북송된 일본인처 1천8백31명(일본 법무성 집계)중 살아남은 생존자의 일부다. 전체 북송 일본인처의 3분의 2정도는 사무친 귀향 염원을 결국 풀지 못하고 이미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편 하나만 믿고 북송선에 오른 일본 여성들의 사연은 가지가지. 일본에서 한국인 남편과 자식들이 겪을 차별을 피해 떠난 사람도 있고 사회주의 북한의 환상에 속아 북한행을 택한 이들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이들이 그후 북한에서 겪어야 했던 비참한 현실은 남편에 대한 「애정」 하나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쓰라렸다. 3년에 한번 고향을 방문할 수 있게 해 주겠다던 북한의 약속은 빈 말에 불과했다. 일본에 두고 온 가족들과의 연락마저 자유롭지 못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우동 통조림 설탕은 설날 먹으려고 숨겨두었습니다. 30년만에 처음 대하는 것들입니다… 이제부터 보내실 때는 절대로 우편으로 부쳐서는 안됩니다. 세금이 너무나 비싸 찾을 수가 없습니다. 미제와 남조선 것은 전부 압수되니 넣지 말아주십시오.다케노」. 「어머니… 창피한 일이지만 배가 고프답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다시 만날 때까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 남으려고 기를 쓰고 있습니다… 너무 살기가 힘들어요. 많이 보내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빚을 갚는데 쓸 시계나 사카린을 보내주세요. 지즈코」. 이같은 내용들은 북송 일본인처들이 일본의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이렇게나마 북한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일본에서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해 북한체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북송 일본인처 중에는 변방의 수용소로 쫓겨 간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정부와 단체들은 인도적 차원에서 북송 일본인처들의 고향방문 및 귀환을 추진하고 있으나 남북이산가족 교류만큼이나 앞날이 험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기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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