泰총리,민주세력 개헌요구 수용…불신임위기 탈출

  • 입력 1997년 9월 25일 19시 57분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위태롭던 태국의 정국이 위기에서 벗어났다. 야당과 민주화세력이 요구해온 개헌을 차왈릿 총리(65)가 수용키로 했기 때문이다. 태국판 「6.29」인 셈이다. 민주당 등 야당과 민주화세력들은 바트화 폭락 등 경제실패와 집권층의 부패를 들어 개헌과 퇴진을 차왈릿 총리에게 요구, 퇴진을 거부하면 26일 하원에서 불신임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새 헌법안을 27일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표결에 부칠 예정이었다. 그러나 차왈릿 총리는 불신임안을 통과시키려 하면 하원을 해산해버리겠다고 맞섰다. 물론 신여망당 등 6개연립여당이 다수인 하원에서 불신임안이나 개헌안이 통과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민주화세력과 국민 여론이 야당의 주장을 지지하는 편이어서 차왈릿 총리도 행복한 편은 아니었다. 더욱이 군부는 의회해산 등의 불안정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정치에 개입하겠다고 공언했다. 궁지에 몰린 차왈릿 총리는 새 헌법안을 수용키로 했다. 이에 따라 그의 불신임안도 부결될 것이 확실시된다. 새 헌법안은 민주화세력이 지난해 12월 학자 변호사 등 99인으로 「제헌위원회」를 구성해 기초, 지난달 16일 확정했다. 헌법안에 대해 방콕포스트 등 현지언론들은 『왕정에서 1932년 입헌군주제로 전환, 근대적 헌법을 채택한 이래 국민의사를 반영한 최초의 헌법안』이라고 극찬했다. 헌법안은 부패방지를 위해 △공직자 재산등록과 각료급 이상의 재산공개 △5만명 이상의 유권자가 연명으로 요구할 경우 정무직 공직자와 의원에 대한 비리조사 의무화 등의 조항을 마련했다. 또한 민주화를 위해 △총리가 임명하던 상원의원을 선거로 뽑고 △내무부가 관할하던 선거관리를 독립된 선거관리위원회에 넘기며 △상원이 하원에 대한 견제기능을 갖도록 했다. 잦은 쿠데타 등 정치불안과 공직자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낀 태국 국민은 헌법개정을 비롯한 정치개혁을 오래전부터 갈구해왔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저항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런 태국도 이제 정치적으로 성숙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구자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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