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파문/외국금융인 시각]『상식 벗어난 대출』

  • 입력 1997년 2월 1일 19시 12분


[許承虎·鄭景駿 기자] 한보그룹 부도사태와 관련, 한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 금융기관 관계자들은 「한보그룹도 문제지만 한보와 거래한 금융기관들은 더 큰 문제」라고 보고 있다. 특정기업에 돈을 몰아주는 것은 결국 은행을 부실화할 뿐 아니라 은행거래 고객과 은행 주식투자자의 재산권까지 침해하는 상식밖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견해를 들어본다. ▼마이클 브라운(시카고제일은행 서울지점장)〓한국의 은행들은 스스로 「기업」이라는 사실을 너무 자주 잊는 것 같다. 정치적인 배후 여부는 알수 없으나 은행이 「상업적인 판단」을 기초로 경영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의 고객에게 은행의 납입자본금(8천2백억원)을 넘는 1조8백억원을 대출한다는 것은 자산구성의 ABC를 무시한 것이다. 이런 사건은 은행장 선임과정과도 꽤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은행장이 「서열에 따라」, 기존 은행장이라는 「직책을 이용해」, 「누구의 친구이기 때문에」 선임되는 풍토에서는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할 것이다. ▼이토 미치요(도쿄미쓰이은행 서울지점부지점장)〓제일은행은 은행 전체여신의 4%이상을 한보철강에 몰아줬다. 도저히 은행가의 정상적인 경영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은 은행경영방식이 비슷하다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보사건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적어도 「정치적 배경을 이용해 거액대출을 받는 일」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은행들은 한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금융기관이 돈을 빌려가는 기업의 장래에 대해 전망을 잘못하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익명을 요구하는 미국계 증권회사의 한 지점장〓한국 은행들은 기업이 빌린 돈을 어떻게 갚겠다는 부분에 대해 정확히 분석할 능력이 없다. 부실대출이 발생해도 처음 대출을 일으킨 사람외에 후임자는 책임지는 풍토가 아닌 것 같다. 이 때문에 한번 대출을 시작하면 점점 규모가 커질 뿐 조기수습할 기회를 잃고만다. 여기에 정치적 힘이 개입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데스먼드 맥고웬(한누리살로먼증권 부사장)〓이번 한보사태가 빚어진 근본적인 원인은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 등 회계시스템이 정확하게 기업의 재무 및 손익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탓. 따라서 인간관계 등 비과학적 요소가 재무제표보다 우선하는 실정이다. 한보사태는 한국의 금융시장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아직도 한국의 경제는 낙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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