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아프간 장악 힘들다…英IISS간행「전략문제논평」

  • 입력 1996년 11월 17일 20시 13분


지난 9월 탈레반의 카불(아프가니스탄 수도) 점령은 지역적 국제적으로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인근국가 가운데 파키스탄만 예외적으로 탈레반의 승리를 축하했을뿐 이란 러시아 타지크 우즈베크 인도 등은 나름대로 이유야 다르지만 상당한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후 몇차례 있은 군사적 패배로 미뤄볼때 탈레반의 위력이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인근국가들은 고위급 회담 등을 통해 대응책을 계속 논의하고 있다. 몇몇 국가들은 정치적 해결책 마련을 위해 국제회의 개최를 제의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러시아의 요청으로 지난 10월22일 아프간사태 논의를 위한 한 차례 회의를 가졌다. 이에 앞서 러시아는 10월4일 카자흐의 알마아타에서 독립국가연합(CIS)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탈레반은 지난 94년9월 아프간 남부지방에서 등장, 급속한 속도로 많은 지역을 장악했다. 탈레반의 구성원들은 인종적으로 파슈툰족이며 대부분이 성격이 상이한 3개 단체의 출신들이다. 탈레반의 지도자들은 창설자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를 포함한 다수가 80년대 구소련군을 상대로 싸운 무자헤딘(전사) 출신들이다. 탈레반의 또다른 주요 구성원들은 전통적으로 옛 아프간왕가를 지지해온 무라니 칸다하리스들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규모가 큰 구성원들은 파키스탄 서부에 위치한 종교학교 마드라사를 졸업한 젊은이들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이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거나 파키스탄내 아프간난민촌의 어린이들이었다. 이 학교는 이슬람교리의 엄격한 해석과 적용, 특히 교육과 고용에 대한 여성들의 권리제한 등 탈레반의 정치적 종교적 이념의 기초가 되는 것들을 가르쳤다. 탈레반은 지난 94년 가을 오마르가 말완다 지역에서 도덕적 타락과 무법천지를 초래한 수많은 지방군벌들을 무장해제시키기 위한 새로운 지하드(聖戰)를 개시함으로써 시작됐다. 이 성전은 곧이어 인근지역으로 확산됐으며 파키스탄의 아프간종교학교 학생들이 대거 이에 몰리면서 급속히 세력이 확장됐다. 94년 이후 탈레반이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두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하나는 내전으로 초래된 무정부상태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파슈툰지역 주민들의 바람 덕이었고 다른 하나는 탈레반 전사들의 열정과 결연한 의지로 인한 것이었다. 이밖에 외부적인 지원, 특히 파키스탄정보기관의 지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장래 정부의 성격에 대한 탈레반 내부의 의견은 일치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는 자신들의 정적과 서방에 살고 있는 행정관료, 심지어 이전의 국왕인 모하메드 자히르 샤까지를 포함한 과도체제를 원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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