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11월 7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 유사는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시스
“‘대만 유사는 곧 일본 유사’라는 인식은 일본의 일부 머리 나쁜 정치인이 선택하려는 죽음의 길이다. 이는 중국에 대한 명백한 내정 간섭이자 주권 침해다.”
쉐젠 일본 오사카 주재 중국 총영사가 11월 9일(이하 현지 시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 X(옛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 중 일부다. 쉐 총영사는 “대만 유사는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발언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를 향해 극언을 서슴지 않으며 비난했다. 쉐 총영사는 11월 8일 X 계정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에게 달려드는 그 더러운 목을 베지 않을 수 없다”는 글도 올렸다.
中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것” 극언 다카이치 총리는 11월 7일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 유사’에 대한 야당 의원의 질문에 “전함(戰艦)을 사용하고 무력행사도 있다면 어떻게 봐도 ‘존립 위기 사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대만 유사(有事)’는 중국의 대만 침공 등 대만해협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상사태를 가리키는 일본식 표현이다. 다시 말해 대만이 공격받는 경우다. ‘존립 위기 사태’는 일본과 밀접한 타국이 무력 공격을 받아 그 영향이 일본 영토나 국민 생명에도 명백한 위험이 될 수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 ‘존립 위기 사태’는 2015년 아베 신조 전 총리 때 제정된 안전보장관련법(안보법)에 신설된 개념으로, 일본 정부는 ‘존립 위기 사태’ 여부를 판단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거나 무력으로 해상 봉쇄에 나서면 자위대가 참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 총리가 대만이 침공받을 경우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해 무력 개입을 할 수 있다고 공식 언급한 것은 다카이치 총리가 사상 처음이다. 말 그대로 중국이 주장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놓고 정면 도전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쉐 총영사의 막말을 두둔하면서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을 두고 총공세에 나서고 있다. 린젠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해서는 안 된다”며 “불장난을 하는 자는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것(玩火者必自焚)”이라고 주장했다.중국 정부의 강경한 입장은 쉐 총영사의 지적처럼 대만과의 전쟁에 일본이 참전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는 11월 14일 가나스기 겐지 주중국 일본대사를 초치해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쑨웨이둥 외교부 부부장(차관)은 “누구든 어떤 형식으로든 감히 중국의 통일 대업에 간섭하려 든다면 중국은 반드시 정면으로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는 실력 행사에도 들어갔다. 중국 외교부는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과 유학 자제를 권고했다. 중국동방항공,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중국남방항공 등 국영 항공사는 자국 국민의 일본행 항공편 취소나 변경 수속을 무료로 처리해주고 있다. 1∼9월 일본을 찾은 중국인은 748만 명으로 국가·지역별로 가장 많다.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 소비액은 1조7265억 엔(약 16조3000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2.3배 증가했으며, 국가별 소비액의 21.2%를 차지했다. 중국 정부의 이런 조치는 일본 관광업계에 실질적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가 인적 교류 차단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일본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갈등이 있었던 2012년 대일(對日) 희토류 수출을 중단한 바 있다. 중국은 또 동중국해 등에서 무력시위를 대폭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대만은 일본 경제 동력 그렇다면 중국 정부의 강한 반발과 보복 조치가 예상됐음에도 다카이치 총리가 강경한 태도를 보인 의도는 무엇일까. 일본 역대 정부는 내부적으로 대만이 공격받을 경우 ‘존립 위기 사태’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공식적으로 이를 언급한 적이 없다. 아베 신조, 아소 다로 전 총리도 퇴임 이후 ‘대만 유사는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라는 취지로 발언했지만, 총리 재임 때는 명확한 입장 표명을 회피했다.
하지만 ‘강한 일본’을 기치로 내건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의 안보와 경제 번영에는 대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때도 “대만 유사가 일본 유사임은 틀림없다”고 밝힌 바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중의원에서 자신의 발언을 특별히 철회하거나 취소할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만 유사시 일본의 무력 개입이 지론인 셈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그동안 중국의 대만 봉쇄 또는 공격은 일본의 경제 동맥을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인식해왔다. 실제로 일본 해외 교역량의 절반 이상이 대만 인근 해역을 통과한다. 일본으로 들어오는 중동산 원유도 대부분 이 항로를 이용한다. 대만은 미국, 중국, 한국에 이어 일본의 네 번째 교역국이다. 일본의 대(對)대만 수출액은 2012년 3조6732억 엔(약 34조6700억 원)에서 지난해 6조8621억 엔(약 64조7600억 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일본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반도체산업 부활에도 대만이 중요하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공장을 가동 중이고 추가 공장 건설에도 나선 상태다. 중국 외교부 싱크탱크인 중국국제문제연구원의 샹하오위 특임연구원은 “다카이치 총리의 이번 발언은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보였던 모호한 입장을 깨고, 대만 문제를 일본의 국가안보 틀에 넣어 대만과 일본의 ‘안보 이익’을 묶으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다카이치 총리는 4월에 중의원 의원 신분으로 대만을 찾아 라이칭더 총통을 예방하는 등 중국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면서 대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카이치 총리는 “대만은 일본과 기본 가치를 공유하고 긴밀한 경제 관계 및 인적 왕래를 갖는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자 소중한 친구”라고 밝히는 등 지금까지 친(親)대만 행보를 해왔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9월 27일 이지스 구축함 초카이호를 미국 샌디에이고 해군기지에 1년간 파견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탑재를 위한 개조와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미 해군이 주관하는 2016년 환태평양 훈련(RIMPAC)에 등장한 초카이호 모습. 미 해군 제공토마호크 탑재하면 러시아도 사정권 더욱 중요한 점은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일환으로 적 기지를 선제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이른바 ‘반격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해 1월 미국과 17억 달러(약 2조5000억 원) 규모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400기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 미사일 가운데 200기는 내년까지, 나머지는 2027년까지 도입될 예정이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9월 27일 이지스 구축함 초카이호를 미국 샌디에이고 해군기지에 1년간 파견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탑재를 위한 개조와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이지스 구축함 7척에도 2027년까지 순차적으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탑재하고, 건조 중인 이지스 구축함 2척에도 배치할 계획이다. 사거리 1250~2500㎞인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은 미군이 여러 전쟁에서 적 방공망과 지휘부에 대한 선제타격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일본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이지스 구축함에 탑재하면 북한과 중국은 물론, 러시아까지 사정권에 들어간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초카이호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운용하는 최초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될 것”이라며 “자위대는 ‘반격 능력’ 보유에서 한 걸음 더 전진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수출한 국가는 영국과 일본뿐이다.
일본의 토마호크 실전 배치는 전수방위 원칙에 따라 방어에 치중하던 무기체계가 실제적인 공격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일본의 토마호크 운용은 대만 유사시 일본의 참여를 원하는 미국 측 이해와도 맞닿아 있다. 미국 군사 전문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는 “만약 중국이 무력을 사용해 대만을 침공한다면 미국은 대응에 나설 것이고, 일본 역시 동맹국으로서 대만 방어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은 일본이 억지력을 강화하고 필요할 경우 공동 방위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길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실전 배치는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 지원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도 적 기지를 선제공격할 수 있는 ‘창’을 보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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