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 아닌 뇌 전기신호 오류… 환자가 발작 일으킬 땐 옷 풀어줘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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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의 ‘진실과 오해’
뇌에 비정상적 자극 더해지면, 정신 잃는 발작 증세 보여
유전부터 치매 후유증 등 연령별로 발병 원인 제각각
약 먹으면 증상 제어 가능… 운전 빼곤 일상생활 영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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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은 ‘세계 뇌전증의 날(매년 2월 두 번째 월요일)’이었다. 국제뇌전증협회(IBE)와 국제뇌전증퇴치연맹(ILAE)에서 뇌전증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리고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2015년 제정했다.

우리 주위에 뇌전증 환자는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작년 11월에 발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뇌전증 환자 수는 15만747명으로 2020년부터 매년 평균 2093명씩 증가하고 있다. 이는 등록된 환자 수로 대한뇌전증학회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는 36만 명 이상의 뇌전증 환자가 있어 인구 150∼250명당 한 명 정도의 비율로 추정하고 있다.

뇌전증을 앓고 있는 환자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 사회적 편견과 오해가 있는 질환이다. 강릉아산병원 신경과 임수환 교수는 “뇌전증으로 진단을 받으면 일상적인 대인 관계, 취업, 결혼 등 사회적으로 여러 제한이 있어 병을 숨기는 환자가 많다 보니 보고되는 수치는 실제 환자보다 적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임 교수와 뇌전증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뇌전증이란?

뇌전증은 뇌질환 중의 하나로 뇌전증의 ‘전(電)’은 전기를 의미한다. 뇌실질 조직에서 특정 부분의 전기적 과활성화로 의식 소실 및 경련을 동반한 발작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될 경우를 뜻한다.

뇌의 신경세포는 전기적인 활동을 통해서 기능을 발휘한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신경세포가 병들거나 신경세포에 불필요한 자극이 가해지면 전기 활동에 이상이 생길 수 있고 비정상적인 전기 활동이 가해질 경우 경련이 생기거나 정신을 잃는 발작이 발생하게 된다.

뇌전증 원인은?
뇌전증의 원인은 연령에 따라 다른 경향을 보인다. 신생아의 경우 선천성 뇌질환, 임신·출산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뇌 손상 등이 원인이며 어린이부터 청소년은 뇌가 완전히 성숙하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집안 내력이 있는 경우에도 해당 연령대에서 많이 발생한다. 청장년층의 경우 사고, 과도한 음주 등 외부 요인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노년층의 경우에는 뇌혈관질환이나 치매와 같은 뇌질환의 후유증으로 많이 발생한다. 어릴수록 선천적 문제일 가능성이 높고 나이가 많을수록 후천적 문제일 가능성이 높은 경향을 보인다. 임 교수는 “중추신경계 감염 질환의 일종인 세균성 뇌수막염 혹은 바이러스뇌염에 의한 뇌병변이 있을 경우 뇌감염의 후유 장애로서 뇌전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뇌전증의 오해와 진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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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은 과거 ‘간질’이라고 불렀다. 잘못된 용어는 아니지만 사회적 편견과 오해가 심해 2009년 뇌전증이라는 용어로 변경됐다. 편견과 오해가 생긴 이유로는 뇌전증 발생 시 동반하는 발작 증상의 영향이 크다. 증상 중 주변 사람이 가장 많이 목격하는 ‘전신강직간대발작’은 전신이 뻣뻣해지고 팔다리가 떨리며 입에서 침과 거품이 나온다. 이런 모습은 과거부터 ‘악마에 씐 모습’ ‘지랄병’ 등 인식이 부정적이었고 질병에 대한 정보가 없다 보니 사회적 편견과 오해가 꾸준히 쌓인 것이다.

Q. 뇌전증은 정신병인가.

뇌전증은 발작의 특성상 예측하지 못하고 사회적인 편견이 있는 질환으로 우울증 및 불안증이 공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현병이나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같은 정신병은 아니다.

Q. 뇌전증은 불치병인가.

뇌전증은 발생 원인 및 나이에 따라서 항뇌전증 약제를 완전히 중단할 수도 있고 고혈압 및 당뇨를 관리하는 것처럼 꾸준히 복용해야 할 수도 있다. 다만 뇌경색·뇌출혈·외상성 뇌손상 등 뇌 병변이 동반돼 발생하는 뇌전증은 약제를 중단하기 힘든 경향이 있지만 뚜렷한 뇌 병변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는 2년 이상 추가적인 발작이 없을 시 항뇌전증 약제를 감량 혹은 중단하기도 한다.


Q. 뇌전증은 인지기능에 영향이 있나.


뇌전증은 2가지 측면에서 인지기능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첫째, 뇌전증으로 인한 발작이 없더라도 뇌파에서 확인되는 뇌전증모양파방전과 같이 전기적으로 과활성화된 부위를 중심으로 기능이 저하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FDG-PET) 검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둘째, 항뇌전증 약물 복용에 의해 경미한 인지기능 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 이전에 개발된 항뇌전증 약제는 진정 효과 혹은 약간의 졸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근래에 개발된 약제는 이러한 부작용이 덜한 편이다. 임 교수는 “특히 노인 뇌전증의 경우 인지기능 저하의 증상이 뚜렷해 간혹 치매 증상과 오인하기도 한다”며 “고령자가 인지기능 저하로 내원하면 선별 검사로 뇌파 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Q. 뇌전증은 전염과 유전이 되나.

뇌전증은 전파시키는 전염성 질환이 아니다. 그러나 일부 유전적인 측면이 있는데 소아 뇌전증에서 유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체 뇌전증 환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다. 또한 외부 요인에 의한 후천적 뇌전증의 경우 유전이 되지 않는다.

Q. 뇌전증 환자는 일상생활이 가능한가.

물론 기본적인 일상생활은 가능하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되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과 법에 의해 제한되는 측면이 있다. 의학적으로 조심해야 하는 것은 음주와 야간 근무를 포함한 교대근무다. 뇌전증 환자는 알코올을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 1∼2잔의 음주도 발작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취한 상태에서 발작 시 2차적으로 머리 부위가 손상되면서 뇌출혈을 유발할 수 있다. 야간 근무로 인한 수면 부족 및 수면 박탈은 전기적으로 비정상적인 과활성화를 조장할 수 있으므로 하루 이틀 밤을 새워 일하는 것만으로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법으로 제한되는 것은 도로교통법에 의거해 부분적인 운전 제한이 있을 수 있고 완전한 운전 금지도 있을 수 있다. 부분적인 제한은 운전 중에 발작이 발생하는 경우 운전자인 환자를 포함해 동승자, 보행자의 위험을 우려해 운전면허 결격사유에 해당한다. 하지만 뇌전증 환자가 항뇌전증 약제를 복용하는 상태에서 1년 이상 추가적인 발작이 없는 경우 의사 소견서를 제출하면 운전이 가능하다. 다만 상업적으로 장기간 운전을 해야 하는 대중교통, 항공기, 열차를 운전하는 경우에는 공익적인 측면에서 예외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뇌전증 환자 발견 시 대처 방법은?

뇌전증 환자가 발작 증세를 보인다면 환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발작 때 발생하는 경련으로 신체 부위를 부딪쳐 크게 다칠 수 있다. 이때는 방석이나 쿠션 등을 받쳐 부상을 방지해야 한다. 간혹 침과 같은 분비물, 넥타이 등으로 인해 질식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환자를 옆으로 돌려 눕혀 입 안의 분비물이 자연적으로 배출될 수 있게 도와주고 넥타이 및 꽉 끼는 옷들을 느슨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

경련이 생겨서 떨리거나 뒤틀린 손과 발을 바늘로 따는 등 민간요법은 발작 완화 효과가 거의 없고 과하게 마사지를 할 경우 환자가 다칠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질식되거나 다치지 않게 환자를 보호해 주면서 발작이 자연적으로 멈출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다.

뇌전증은 생각보다 흔한 병으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다. 선천적으로 뇌 병변을 갖고 태어나는 소아나 뜻밖의 감염, 외상으로 인해 뇌전증이 발생하는 것으로 그 원인 또한 다양하다. 단적으로 정상인도 극단적인 수면 부족이나 알코올에 장기간 노출된 상황이라면 일회성으로 발작이 유발되기도 한다. 임 교수는 “실제 정상 성인의 8분의 1이 일생 동안 이런 식으로 발작을 한다”며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흔한 질환이기 때문에 오해와 편견 없이 일반적인 시선으로 봐 달라”고 당부했다.

안소희 기자 ash0303@donga.com
#헬스동아#건강#의학#뇌전증#뇌 병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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