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男과 女] 현실 같은 재난에 무력감 vs 관람 필수 아이템 ‘냉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8월 11일 06시 57분


영화 ‘터널’은 붕괴된 터널에 갇힌 평범한 일상의 위기를 담아낸다. 그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한순간 몰아닥치는 재난의 위험 그 자체다. 사진제공|비에이엔터테인먼트
영화 ‘터널’은 붕괴된 터널에 갇힌 평범한 일상의 위기를 담아낸다. 그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한순간 몰아닥치는 재난의 위험 그 자체다. 사진제공|비에이엔터테인먼트
주연: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
감독: 김성훈
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
10일 개봉·12세 관람가·126분

자동차 회사의 영업사원이 퇴근길에 나선 뒤 통과하던 터널이 무너지면서 마주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그린 이야기.


● “하정우 연기는 비현실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이다”


영화 ‘부산행’에 오른 사람들은 엇나간 욕망의 자본이 몰고 온 재난에 봉착한다. 영문도 모른 채. 그렇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공유)의 뒤늦은 인식과 후회는 그나마도 다행일까, 아닐까.

영화 ‘터널’ 속을 내달리는 주인공(하정우)은 무분별한 개발의 부실이 붕괴되는 상황에 내몰린다. 영문도 모른 채. 그 역시 ‘또’ 그렇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건, 결코! 다행스럽지 않다.

어쩌면 ‘터널’과 ‘부산행’의 차이는 그것인지 모르겠다. 영화와 현실 사이 간극. ‘부산행’은 현실에 바탕을 두지만 어차피 허구의 세계임을 다행으로 여기게 한다. 하지만 ‘터널’은 현실 속 기시감의 확연한 발현이다.

위 ‘또’의 따옴표는 그래서 엄중한 의미를 갖는다. 여전히 엇나간 욕망의 자본과 부실은 그렇게 현실을 끊임없이 무너뜨려왔기 때문이다. 그 어이없는 대형의 재난들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잇단 비극의 현실, 그래서 극중 뉴스 앵커의 “대한민국의 안전이 또 다시 무너졌다”는 멘트는 차라리 ‘클리셰’(진부하거나 상투적이거나 전형적인 대사나 이야기)가 아닐까. ‘클리셰’의 반복이 그토록 가슴 아플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비극은 바로 여기에도 있었다. 영화는 그 아픈 현실을 그대로 담아냈고, 이야기는 허구가 아닐 수 있음을 말한다. 붕괴된 터널의 고립된 공간, 그 속에 갇힌 평범한 일상, 이를 ‘또’ 그저 지켜보며 발 구르다 쓰러질 수밖에 없는 무력함. 어디서 많이 보아온 듯, 느껴본 듯하지 않은가.

그 사이로 피식 자아내는 웃음의 절묘한 설정과 구성은 하정우의 연기에 빚진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비좁은 공간 안에서 그가 펼쳐내는 연기는 비현실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이다.

헌데, ‘터널’이 1000만 관객을 불러 모은다면 그것은 다행일까, 아닐까.


● “가슴이 막힌 느낌 내게 닥치지 않길 바랄뿐이다”


차마 내 일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극장에 들어가며 아이스커피 한 잔을 손에 들지 않았다면 2시간 내내 계속됐을 갈증을 어떻게 풀었을지 아찔하다. 신파 영화의 필수 준비물이 손수건이라면, ‘터널’ 관람의 지참 아이템은 ‘냉수’다.

잊고 싶은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가 있다. 잔혹한 그 현실 앞에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혹시 ‘내 일’이 될지 몰라 차마 외면하지도 못한다. ‘터널’이 그렇다. 딸 아이 생일에 케이크를 사들고 가던 퇴근길에서 터널이 무너져 한 달 넘도록 갇힐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영화는 부지불식간의 재난, 그 예고 없는 불운을 맞닥뜨린 한 가장(하정우)의 이야기이자, 한 치 앞을 모르고 살아가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하루 멀다하고 터지는 현실의 사건과 사고, 그보다 더 거대한 재난을 마주할 때면 처음엔 충격에 빠지고, 다음엔 안타까움에 휘말리지만 결국 ‘내 일’이 아니라는 데 안도하게 된다. 하지만 기교를 빼고 헛된 희망조차 주지 않는 영화 ‘터널’에서 그런 안도감을 얻기란 어렵다. 재난 희생자 가족이 끝까지 구조를 바라는 모습,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족이 가해자로 취급되는 역전된 상황은 특정 사건을 떠올리게 해 섬뜩하다.

‘터널’은 재난이 그저 영화 속 상상, 뉴스로 접하는 소식이 아니라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지 모를 실재가 될 수 있다는 위협감마저 안긴다. 보고 나면 통쾌하기보다 가슴 한 쪽이 꽉 막힌 듯 답답하다. 비슷한 재난 소재의 ‘부산행’과 비교하면 확실히 ‘재미’는 덜하다.

오히려 답을 찾아야 숙제가 주어진다. 재난에 처한 나를 구해줄 사람은 누굴까. 터널에 갇힌 이가 내 남편이라면, 과연 뭘 해야 하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무력감을 마주한다면 어떻게 견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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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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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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