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송평인]브로맨스의 남자 관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KBS TV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목숨을 건 작전마다 생사를 함께한 송중기(유시진 대위 역)와 진구(서대영 상사 역)의 관계를 ‘브로맨스’라고 부른다. 브로맨스는 브러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의 합성어로, 통상적인 우정 관계를 뛰어넘은 남자들끼리의 관계를 말한다. 성적인 암시가 없다는 것이 동성애와의 차이다. 이 말은 1990년대 미국 스케이트보드 전문 잡지에서 처음 쓰였다고 한다. 많은 시간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탄 남자들 사이의 끈끈한 관계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요즘은 정치 기사에도 이 말이 쓰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5년 인도를 방문했을 때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의 관계가 언론에서 브로맨스로 표현됐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6일 미국 워싱턴 세계은행에서 김용 총재를 만나 “요즘 브로맨스라는 말이 있는데 저와 김 총재의 관계는 그보다 훨씬 깊고 넓다”라고 말했다. 서양인들에게 둘러싸인 국제기구에서 한국말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둘만의 각별한 사이를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브로맨스의 상대편에는 로맨스가 있다. 지금은 흔해 빠졌지만 로맨스가 문학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양 중세의 영웅 문학은 물론이고 코르네유의 비극까지만 해도 로맨스는 영웅 스토리에 밀렸다. 라신의 시대에 와서야 로맨스가 승리했다. 19세기 ‘에르나니’에서 ‘시라노 드베르주라크’까지 낭만주의 문학에서 로맨스는 신성시됐다. 20세기에 와서 로맨스는 ‘천국의 아이들’에서 ‘타이타닉’까지 영화를 통해 더 넓은 무대를 차지했다.

▷브로맨스는 새로운 가치다. 과거 영웅들은 서로 싸우는 영웅들이었지 협력하는 영웅들이 아니었다. 우정은 사랑보다 어렵다. 남자들은 상대를 제거할 대상으로 여기거나 아니면 상명하복의 관계에 묶어두려는 경향이 강하다. 새누리당은 서로를 향해 배신의 말을 퍼붓다 함께 망했다. 남자들끼리도 평등한 관계에 기초한 협력이 요구되는 시대다. 우정의 정치가 힘들다면 제대로 된 선의의 경쟁이라도 해야 살아남는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태양의 후예#송중기#진구#브로맨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