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로빈슨 크루소’ 화성 표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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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개봉 ‘마션’

사고로 막사 안에서 소중히 기르던 농작물이 얼어 죽자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닥터 만으로 나와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던 맷 데이먼은 같은 우주복을 입고 나온 영화 ‘마션’에서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는 와트니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호호호비치 제공
사고로 막사 안에서 소중히 기르던 농작물이 얼어 죽자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닥터 만으로 나와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던 맷 데이먼은 같은 우주복을 입고 나온 영화 ‘마션’에서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는 와트니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호호호비치 제공
사고를 당해 정신을 잃었는데 생명체 하나 없는 무인지대에서 홀로 깨어났다면? 심지어 그곳이 지구와 7000만 km 넘게 떨어진 화성이라면?

10월 8일 개봉하는 영화 ‘마션’(12세 이상)은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화성에서 조난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그가 속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 탐사대는 화성 탐사 도중 강력한 모래폭풍을 만난다. 파편을 맞은 와트니는 통신이 두절되고, 동료들은 그가 죽었다고 판단하고 화성을 떠난다. 깨어나 상황을 파악한 와트니는 내뱉는다. “×됐다.”

기약 없이 구조를 기다리면서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에서 ‘마션’은 ‘조난물’의 원조 격인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연상시킨다. 물론 따뜻하고 물 맑은 무인도에 조난당했던 로빈슨 크루소와 달리 ‘마션’ 속 환경은 훨씬 열악하다. 100도 가까운 일교차에 혹독한 모래폭풍이 일어나는 화성은 하루를 버티기도 힘들다. 소변 한 방울까지도 재활용해 식수로 사용하고, 유해한 방사능을 내뿜는 플루토늄으로 난방을 해야 한다.

화성을 배경으로 한 ‘마션’은 요르단의 와디룸 사막에서 촬영했다. 화성 지표면 사진을 참고해 가장 흡사한 곳을 찾아냈다. 호호호비치 제공
화성을 배경으로 한 ‘마션’은 요르단의 와디룸 사막에서 촬영했다. 화성 지표면 사진을 참고해 가장 흡사한 곳을 찾아냈다. 호호호비치 제공
화성의 극한 환경에 맞서는 것은 식물학자이자 기계공학자인 와트니의 전문 지식과 21세기의 발달한 과학기술이다. 그는 인분을 활용해 감자 농사를 시작하고, 식물 재배에 필요한 물을 마련하기 위해 수소와 산소를 결합하는 장치를 고안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선보이는 최신 과학기술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현재 NASA가 연구 중인 모델을 참고해 제작한 거주 모듈이나 우주복, 화성탐사차량 등이다.

극한생활을 버티는 와트니의 또 다른 원동력은 ‘긍정’이다. 희망을 발견할 때마다 그는 환호하고, 탐사대장이 컴퓨터에 담아온 노래를 들으며 즐기는 여유까지 보인다. 이런 그의 생존기는 요즘 예능 대세인 ‘관찰예능’을 떠올리게 한다. 와트니는 막사 곳곳에 설치된 소형카메라에 자신의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1인 방송’처럼 카메라를 바라보며 자신을 중계하기도 한다. 와트니의 일상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화성 최초의 감자밭에서 싹이 틀 때의 기쁨이나 막사가 통째로 날아가 농사를 망쳐버린 좌절에 자연스레 공감하게 된다.

영화의 원작인 동명 소설을 쓴 앤디 위어는 15세 때부터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기 시작한 인물로 게임 ‘워크래프트 2’ 개발자로도 유명하다. 어릴 때부터 SF광이었던 그는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 화성에서 벌어질 법한 사건이나 살아남는 방법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집중했다. ‘마션’은 탄탄한 원작에 ‘에이리언’ 시리즈, ‘프로메테우스’(2012년) 등으로 ‘SF 거장’으로 불리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연출, NASA 소속 과학자와 우주비행사의 검증을 더해 완성됐다.

지난해 개봉해 관객 1000만 명을 넘겼던 영화 ‘인터스텔라’가 지구 멸망을 가정한 난해한 물리학 지식을 기반으로 관객들의 ‘지적 정복욕’을 자극했다면 ‘마션’은 똑같이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좀 더 쉽고 코믹하다. 2015년 현재 우주 탐사에 관한 과학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는 재미도 있다. 영화 막바지에는 과연 단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인류가 어떤 희생까지 감수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며 잔잔한 감동까지 안겨 준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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